허재영 충남도립대학교 총장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조선 후기 영조 임금 때 출생해 정조 임금 때까지 활동한 사상가이자 소설가다. 박지원은 실학(實學) 사상의 한 조류인 북학(北學)을 배태시키고 북학 운동을 시작했다. 북학파는 18세기 이후 청나라의 새로운 시대 학문인 고증학과 기술 문명을 배우자고 주장한 학파로서 연행사(燕行使·조선 후기 청나라로 보내던 사신)에 수행원으로 따라갔던 집권층의 젊은이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북학 운동은 병자호란(1636년) 이후 조선 후기 사회의 대의였던 북벌론(北伐論)의 시의성이 퇴색하고 선진화하는 청나라의 현실을 인정해 일어났다. 조선 사회는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은 후 한 세기에 걸친 국가 재건 사업을 마무리하고 18세기에 이르러 조선 고유문화의 전성기인 진경시대(眞景時代)를 만들어 낸다. 문화 전성기 이후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됐는데, 조선 중화주의에 빠져서 고립된 사이에 조선의 민생이 청나라에 비해 낙후했다는 인식과 농경 사회에서 상공업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각성이 일어나게 된다.

이용후생(利用厚生)은 북학파가 강조한 실학 이념이다. ‘이용’이란 백성의 쓰임에 편리한 것으로서 농사를 짓거나 물건을 만드는 도구나 유통 수단 등을 쓴다는 의미고, ‘후생’은 의식(衣食) 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하여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청나라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변발을 한 오랑캐 나라, 되놈의 나라 중국에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고 말하는 당시 조선 선비들에게 반발하면서, 중국의 장관(壯觀)은 ‘깨진 기와 조각과 냄새나는 똥거름에 있다’고 말한다. 허식에서 벗어나 깨진 기와도 말똥도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이용과 후생의 바탕이다. 그러면 삶이 여유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후생이라는 말은 ‘백성의 덕을 바르게 하고 백성들이 편하게 쓰도록 하고 백성의 생활을 여유 있게 하는 세 가지를 조화시킨다(正德利用厚生唯和)’라는 말에서 인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덕을 이용·후생보다 앞에 두어 반드시 덕성의 실천을 바탕으로 하여 정치상의 실천에 도달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자본주의의 폐단인 부의 양극화, 부에 의한 서열화, 자원의 고갈, 환경 파괴 등은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이용후생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어 사회적 공평성을 간과하게 될 경우 발생하게 된다. 최근 극심한 추위와 더위가 반복되고 있다. 극심한 홍수나 가뭄도 빈번하다. 미세먼지도 그렇다. 가난이나 신체 장애 등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처할 능력이 떨어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된다. 극단적인 자본주의는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며, 결국 사회의 도덕(정의)은 인문학 서적의 문장으로만 남게 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이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머지않아 윤리가 해체된 상태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 정덕을 깊이 생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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