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김영 기자] 법원이 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그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이었다는 판단이 배경에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곧 양 전 대법원장을 두고 '이 사태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라고 한 검찰 주장을 법원이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사유를 밝혔다.

통상 법원은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때 ▲ 범죄혐의의 소명 ▲ 범죄의 중대성 ▲ 증거인멸 우려 ▲ 도망의 염려를 주요 판단 기준으로 여긴다.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 도주 우려를 제외하고는 검찰이 '구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유를 사실상 모두 받아들인 셈이다.

법원이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이면에는 법원과 검찰 간 '사건 프레임'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 이런 다툼은 지난달 초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서 드러난다.

양 전 대법원장을 심리한 명 부장판사는 고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본건 범행에서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등을 고려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법관의 첫 영장심사를 맡은 임민성 부장판사도 기각 결정을 하면서 비슷한 사유를 제시했다.

법원은 이미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범죄혐의 중심에 높고 직제상 '윗선'인 박·고 전 대법관의 가담 정도를 따져본 뒤 "공모관계 소명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검찰은 임 전 차장 범죄혐의에 가담 정도를 따지는 법원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뒤집기 위해 두 전직 대법관 영장 기각 후 한 달 넘게 직접 개입 정황을 뒷받침하는 증거 수집에 주력해왔다.

이어 검찰은 지난 18일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징용소송 재판개입 등 이 사건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혐의들에 걸쳐, 단순히 보고받는 수준을 넘어 직접 주도한 사실이 진술과 자료를 통해 확인되기 때문에 구속영장 청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의 최종적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로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했다.

법원이 이날 혐의 소명과 범행의 중대성을 인정하며 영장을 발부한 것은 이 사건의 '최정점'이자 '주범'이 양 전 대법원장이라는 검찰 주장을 사실상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법원이 이날 '증거인멸 우려'를 발부 사유로 든 것도 주목된다. 박·고 전 대법관 영장 판단 때는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된 점"을 고려해 증거인멸의 우려가 적다는 점이 주요한 기각 사유 중 하나였다.

검찰 안팎에선 양 전 대법원장이 후배 법관들의 진술에 대해 '거짓 진술'이라는 취지로 반박하거나 자신의 개입 근거가 되는 주요 증거자료에 대해 '사후조작 가능성'을 주장하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점이 고려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사법부 수장을 지낸 그가 불구속 상태로 남은 수사와 재판을 받게 할 경우 후배 판사들과 말 맞추기 등 증거인멸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날 영장 발부를 두고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고 실무를 책임지다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된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의 형평성도 일정 부분 고려됐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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