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충남본부 취재부장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흉악한 범죄에 대한 정보를 매일 접하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또 반대로 부모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자식을 죽이는 일부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아무 이유없이 죽이는 묻지마 범죄까지 흉악한 사건들을 하루가 멀다하고 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우리가 거의 매일같이 접하는 이러한 흉악범죄는 피해 대상과 그 방법도 나쁘게 진화해 날이 갈수록 잔인해 지고 있다. 그런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흉악범들을 잡고 보면 대부분 어려서부터 크고 작은 폭력에 노출돼 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의 경우 어렸을쩍 그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가정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경우가 많다. 학교폭력 가해학생들과 상담해보면 그 중 상당수가 과거 자신도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고 말한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군대 역시 고참에게서 폭력을 경험한 쫄병이 시간이 지나 고참이 되면 다시 쫄병에서 폭력을 가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 였거나 폭력을 지켜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폭력자체는 나쁘긴 하지만 당장의 문제와 불편함을 해결하는 데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며 익숙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폭력의 내재화(內在化) 양상은 개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직과 사회전체적으로도 같은 형태로 발현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체육계의 폭력·성폭력 사건들은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선수시절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하며 운동을 배운 선수가 은퇴후 코치가 되면 다시 선수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목격자들은 침묵한다. 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과정에는 ‘내 때는 이랬는데’라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한다. 목격자들은 잘못된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맞서 싸울 경우 자신이 잃어야하는 것들 때문에 비겁함을 택한다.

메달과 국가대표 선발, 실업팀 진출까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선수와 코치들은 폭력에 대한 개인의 내재화를 넘어 조직의 내재화를 겪는다. 조직은 조직의 안녕을 위해 피해자 개개인을 외면하고 내부고발자는 ‘배신자’로 낙인찍어 왔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부조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다 보면 때릴 수도 있지’,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군대는 얼차려로 돌아가는 거지’. 그동안 우리사회는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개인의 폭력과 조직의 폭력을 대수롭지 않은 일은 듯 애써 외면해 왔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 악습이 폭언과 폭력을 넘어 성폭력으로까지 진화하는 동안 우리사회 전체는 방관자였던 셈이다. 폭력에 대해 둔감했든 관대했든 또는 외면했든 우리사회는 폭력이 일상화되고 일반되는 것을 그동안 묵인해 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사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몇몇 피해자의 용기로 우리 현실에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폭력의 민낯을 드러낼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폭력은 우리사회 전체에 더욱 견고하게 구조화되고 내재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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