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만나다]
완사모 10주년 기념식 이목 집중, 총선 출마에 대한 말씀 듣고 있다
진영논리 떠나 화해·포용 필요, 대북정책 국민 공감 형성 중요
시장 개입 과도하면 문제, 기업·노동정책 균형 있게
세계에서 유래 없는 성공 국가, 잘한 것 승계하고, 잘못은 시정
검찰·언론 잘못 시인하고 사과해야

▲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진=백승목 기자
[충청투데이 백승목 기자] 대담 = 김승한 주필

"새해 들어 대전과 세종, 충남 홍성·예산, 천안 지역에서 총선 출마에 대한 권유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행보가 주목받는다. '이완구 역할론'의 기대감 때문이다. 보수 전반을 아우르는 구심점 형성이 부재한 상황에서 총선을 준비하는 자유한국당 인사들은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보수 재건의 기수(旗手)로 이 전 총리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이유다. 전국적인 인지도와 경쟁력을 갖춘 이 전 총리로의 이합집산이 일어날 가능성이 대두된다.

이 전 총리가 새해 첫 공식 일정으로 참석하는 '완사모(이완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10주년 기념식은 수많은 정치인과 지지자들로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신년회가 될 전망이다. 기념식은 오는 29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다. 3선 국회의원에 민선 도지사, 집권당 원내대표, 국무총리 등 40여년 간 공직생활을 한 이 전 총리에게 묻고 싶은 말들이 많다. 산전수전 다 겪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이완구 해답집'이 있을 것 같았다.

현역 국회의원 20~30명과 언제든 식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폭넓은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총리는 "부정하지는 않지만, 전당대회도 출마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럴 필요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평소 궁금했던 자민련과 같은 충청권 정당의 재탄생과 충청대망론, 보수 대통합 등과 관련해 솔직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서울 도곡동 이 전 총리의 자택에서 진행했다. 서너시간을 흐트럼 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건강하지 않으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느냐"고 했다. 건강에 대한 걱정은 기우(杞憂)였다.

-보수의 구심체가 없다고 한다. 보수의 결집이 가능하다고 보나?

"과거에는 3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상징적인 인물들이 존재했다. 보수정권이 무너지면서 보수 분열, 탄핵을 둘러싼 책임론 등이 불거졌지만 차츰 보수가 재정립되면서 통합된 형태로 가리라고 전망한다.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비가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전당대회 불출마 결심에 변동은 없나?

"당 대표가 되려면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나는 당 통합에 기여하고 싶다.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당대표 경합에 나선다는 자체가 새로운 계파, 새로운 경쟁으로 당의 분열을 만들 소지가 있기 때문에 출마하지 않는다. 또 이번에 당대표로 선출된다 하더라도 잘못하면 당이 분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새로운 계파가 만들어 질 수 있어 통합이란 명제에 반하기 때문에 통합에 기여하는 것이 전직 총리의 역할이지 새로운 계파를 유발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 내년도 총선은 출마하나?

"총선 출마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생각해 본 바 없다. 그러나 신년 들어 대전과 세종, 충남 홍성·예산, 천안 등지에서 총선 출마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듣고 있다."

(이완구 역할론이 고개를 들면서 그의 새해 첫 일정인 완사모 모임에 이목이 집중된다. 이번 완사모 모임은 순수한 팬클럽 모임을 넘어 이 총리를 보수 재건의 구심점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정치적 함의가 엿보이고 있다. 이 전 총리가 충남지사 시절인 2009년 창립한 완사모는 현재 등록 회원수만 2만8000여명에 달한다. 29일 열리는 완사모 창립 10주년 기념식에는 이 전 총리가 참석하면서 600~700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 대법원의 무죄판결 이후에도 계속 싸우고 있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 소송 관련 자료가 수북이 쌓여있다.
사진=백승목 기자
-충청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없다. 과거 자민련처럼 충청지역을 근거로 한 정당 출현이 가능하다고 보나?

"영호남 중심으로 편중된데 따른 허전함, 공허함 같은 것을 충청권 주민들이 느끼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그런 공허함 때문에 나온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충청대망론은 여전히 유효한가?

"JP(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충청권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영·호남·충청이라는 삼각 체제를 굳혀주고 가셨다는 점이다. 2018년 불미스러운 일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낙마했지만, JP가 50년간 충청의 거목으로 계셔주면서 충청대망론이 이어져올 수 있었다. 충청대망론의 불씨를 이어나가기 위한 명맥, 정치 분위기, 정치 지도에서 충청 정치인들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측면이 있다. 충청인들의 절망감을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대망론의 불씨를 이어나갈 유능한 충청 정치인이 나타나주길 바란다. 그 대상은 나도 될 수 있고, 유능한 후배들이 나올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적폐청산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국무총리를 역임한 사람으로 진영 논리와 당을 떠나서 현 상황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정권교체는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 될 수 있는 사안인데, 전 정권에 대한 문제를 지금처럼 계속 들춰내면 이 나라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다. 보수든, 진보든 새로 집권한 세력이 전 정권의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서 나가는 건 당연하지만, 잘못만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전 정권의 좋은 점은 승계하고 잘못된 점은 보완하는 정치 메커니즘이 정립돼야 한다. 인류 역사 내지 우리 역사를 봐가면서 당면한 문제를 지혜롭게 잘 풀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아픈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 발전한 역사를 보면 안보, 성장,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고 하는 큰 이념적 축을 갖고 GDP 100불도 안 되는 나라에서 3만불 시대가 됐다. 그 와중에 우리는 민주화라고 하는 과정을 같은 시기에 겪으면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성공을 이끌었다. 최근에 당혹스러우리만큼 갑자기 이념과 진영 논리가 부각되면서 갈등 구조로 가는 것은 결코 우리 국가와 앞날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가?

"국정운영을 하는 모든 지도자에게는 공(功)과 과(過)가 있다. 공은 승계하고 과는 개선하면 되는 것이다. 나의 일화를 예로 들자면 13년 동안 충남을 이끈 심대평 전임 지사에 이어 2006년 충남지사에 취임했다. 그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사람은 아니었지만 심 전 지사를 13년 동안 모신 비서실장을 비롯해 7명의 비서 등 단 한 사람도 바꾸지 않은 것이다.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가 하면 법무부에 연락해 도지사 특별 보좌역으로 검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그를 법무 특보로 근무하게 했다. 시대와 기준에 따라 전임을 모두 적폐로 몰아가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국정운영을 해보면 공과는 지도자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어떤 정권과 정부가 고민을 하지 않았겠는가. 과거 정권들의 사명과 고충, 정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극은 되풀이된다. 집권 3년차로 접어든 현재, 화해와 포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청산에만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이념과 진영논리가 덧칠해지고, 여기에 최저임금, 주 52시간 근무 등 정책적 문제까지 겹치면서 국민들이 피로감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내놔도 효율적으로 효과를 얻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총리를 지낸 나의 경험칙이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

-현 정부의 대북관에 대해 조언하고 싶은 부분은?(이 전 총리는 지난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당시 보수 진영 인사로는 유일하게 평양에 다녀왔다.)

"역지사지 해보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3대 세습을 하는데, 국제적으로나 내부적으로 나름 논리 개발을 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겠나. 내가 2000년 6월15일 정상회담 때 북한을 방문해 만나 본 북한 핵심 권력층의 당시 생각은 외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은 받되, 개방은 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갖고 있음을 확고히 느꼈다. 다만 김정은 이라는 젊은 지도자가 북한을 통치하는 상황을 봐서는 다소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만 북한 권력구조의 본질을 바꾸기는 힘들다. 개혁과 개방이 되면 체제불안을 넘어 붕괴까지 올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북핵 문제 역시 생존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다. 이 문제는 파키스탄, 이스라엘, 인도의 사례에서 보듯 비핵화가 마치 남북 혹은 북미 관계의 모든 것인 냥 생각하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따라서 서두르지 않아야 하고,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남북간의 통일된 의견이 도출돼야 한다. 대한민국 갈등 문제와 이념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면 남북문제도 풀릴 수 없다. 내부에서부터 통합과 공감대가 확대되고 갈등구조가 없어야, 이를 동력으로 남북 관계도 원활히 추진될 수 있다. 내부에서조차 통합을 이루지 못하는데 어떻게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이뤄낼 수 있겠나."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다시 소송을 걸었다.

"나는 검찰과 잘못 보도한 언론이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에 대해 현재까지 답이 없다. 더구나 소송을 제기한지 7개월이 지났는데도 검찰은 묵묵부답이다. 고소인 조서조차 받고 있지 않다."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에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무죄판결을 받은 이 전 총리는 당시 수사를 맡았던 문무일 특별수사팀장(현 검찰총장)을 비롯한 7명의 현직검사와 관련자 19명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미지가 생명인 정치인은 대개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사건에 대해 재론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그럼에도 이 전 총리는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더구나 상대는 현직 검찰총장 등이다.)

-검찰을 상대로 싸운다는 게 힘들 텐데.

"현직 국무총리를 상대로 검찰이 의혹에 대해 무리하게 또는 불법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면서 기소를 했다. 심지어 공익의 대변자인 검찰권을 무기로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사실이 아닌 사안을 불법으로 수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건 안 되겠다 싶었다. 개인적으로 좀 힘들더라도 사법 정의를 구현시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정치검찰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일념 하에 재판을 시작했다. 전 법조인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민·형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무리한 수사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검사가 자신들이 제출한 증거를 스스로 폐기했다고 하면 어느 누구가 재판에 승복을 하겠는가."

-경제 문제가 심각하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무너지고 있다.

"저도 경제 관료를 했고, 국회에서 경제관련 상임위 활동을 했다. 정부가 과도하게 기업과 시장에 개입하게 되면 경제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기게 돼있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무 등 현 정부가 너무 이념 지향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려고 하니 시장 자율성 침해로 시장이 위축되고 투자를 안 하게 된다. 과도한 친 노조 정책도 상당히 기업 활동 위축을 시키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업과 노동정책의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리=백승목 기자 sm1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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