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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투데이 최윤서 기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최근 들어 느낀 비영리 모금단체들의 이면을 보면 찰리채플린의 이 말이 딱 생각난다.

연말연시를 맞아 각종 비영리 단체들의 모금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우리는 흔히 방송이나 언론매체 등 미디어를 통해 기부행위나 나눔활동의 장밋빛 결과만을 접한다. 기부문화 역시 멀리서 보면 참으로 희극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개인이 소중한 마음을 보탠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성스러운 행위를 매개하는 일부 비영리단체들의 어두운 단면을 비췄을 때 발생한다. 얼마 전 유명 동물보호단체가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변호사 비용과 실손 보험료 심지어 안락사 약값에 지출했다는 의혹이 보도돼 파장을 일으켰다. 연간 후원금만 20억이란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릴레이 기부 캠페인 ‘아이스버킷챌린지’ 역시 최근 몇년간 SNS상에서 유행처럼 번져 나갔지만 그 뒷이야기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이스버킷챌린지로 모금된 돈의 액수는 한화로 1025억원에 달한다. 이 중 목적대로 루게릭병 환자를 위해 쓰인 돈은 27% 미만에 불과했다. 나머지 73%의 돈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물론 기부금의 일부는 재단 중역의 월급으로 쓰였다.

비영리 재단 재정 투명성을 감시하는 국제기관인 ECFA에 따르면 원래 의도한 기부 프로젝트에는 최소 80% 이상 기부돼야 신뢰할만한 비영리적 기부활동이라고 설명한다.

지난달 본보가 연속 보도한 비영리단체들의 모금대행 역시 비슷한 맥락일 수 있다.

내가 낸 기부금이 오롯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일 것이라는 마음은 과연 기부자의 비현실적인 기대인 것일까. 한 국제공인 모금전문가는 본인의 저서에 기부를 요청하는 행위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내가 낸 후원금이 모금가를 위한 것인지, 기부자를 위한 것인지 감상적 오류에 빠져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기부의 손길이 꽁꽁 얼어붙었다. 기부문화의 선순환을 위해서 한국 기부문화의 현주소를 제대로 진단하고 개선해 나갈 시점이다.

최윤서·대전본사 취재1부 cy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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