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균 대전 전민초등학교 교장

1980년 4월 1일은 제가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날입니다. 서산군 부석면에 있는 조그만 학교였습니다. 가사초등학교, 12학급 규모의 조용한 학교였습니다. 그 작은 시골학교에 어느 날 학부모 단체로부터 피아노를 기증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별동 건물, 피아노 교실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교실이었습니다. 불을 밝히기 위해 버스를 타고 부석면 시장으로 나가 전깃줄과 백열전등을 구입했습니다. 매일 저녁, 바이엘부터, 체르니, 하농 교본을 놓고 깊은 시간까지 피아노연주에 젊음을 불태웠습니다. 주말에는 서산읍내 서점에 들러 당시에는 꿈도 꾸지 못할 명곡집도 미리 사다 놓았습니다. 그게 벌써 40년전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열정의 씨앗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대중가요정도를 연주하는 수준입니다만 안타깝게도 독보력의 한계를 실감합니다. "당신은 어린시절에 피아노를 배웠어야 했어…" 피아노를 전공한 저의 집사람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7080레파토리로 한 두시간 푹 빠져 연주에 몰입하는 저의 모습, 악보도 없이 감각으로만 연주하는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한 모양입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세상, 저에게는 바로 평생재산입니다. 어린시절로 잠시 돌아가 봅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자연이 놀이터였습니다. 여자들은 소꿉놀이, 삔치기, 고무줄놀이를, 남자들은 딱지치기, 구슬치기, 깡통차기, 자치기, 비석치기, 제기차기 등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놀이가 참 많았습니다. 비가 오던 날이면 동네 친구들과 하천 개울을 따라 그물을 들고 물고기 잡이에 나섰다가 하천을 따라 너무나 멀리 내려가서 길을 잃은 적도 있었습니다. 여름철에는 논두렁 사이에 있는 지하수로 채워진 조그만 연못, 우린 여기를 둠벙이라 불렀는데 그곳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다보면 바닥에서 올라온 진흙가루로 금세 웅덩이 물은 새까맣게 변했지만 우리들에게는 천혜의 물놀이 장소였습니다. 가을이면 뒷산에 올라가 떨어진 밤도 줍고 으름도 따먹고 상수리, 도토리도 모았습니다. 겨울철이면 나무판자, 못쓰는 창문바닥 도르래 철선을 몰래 구해 썰매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무나 탈 수 없는 외발썰매도 있었습니다. 양팔로 긴 꼬챙이를 잡고 신나게 구르면 바람을 가르며 속도감을 뽐냈습니다. 창호지와 대나무살을 다듬어 연을 만들고 연줄에 편지를 매달아 달면 그 줄을 타고 하늘 끝까지 올라 연에 전달되는 일명 편지배달 놀이에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정월 대보름 즈음이면 지불깡통 불놀이로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구멍이 숭숭뚫린 깡통안에 불쏘시개를 주워 넣고 불을 붙여 돌리면 쉭쉭 소리를 내며 멋지게 타올랐습니다. 지금도 그 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 합니다. 그 불기둥으로 위세를 떨치며 이웃 마을과 한판 붙었던 지불놀이 전쟁에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습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 그때 그 시절 행복했던 그림들입니다.

'전민새바람' 들어보셨나요, 제가 몸담고 있는 학교입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대덕연구단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전민초등학교는 '전민새바람'의 주인공입니다. '자동발표' '목마름장학' 소나기토론1탄, 2탄, 3탄… 결국 토론대장으로, 리더십 짱으로 평생재산을 갖춘 어린이들입니다. 그 놀라운 모습, 알리고 싶습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리어 드넓은 세상에 뿌리를 내리듯, 전민새바람은 드넓은 세상을 향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불아라, 새바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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