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충북무심수필문학회 사무처장

내가 즐겨가는 칼국수집이 있다. 솔직히 국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집을 자주 드나드는 이유는 주 메뉴인 칼국수보다는 깍두기의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뜨끈한 국물과 쫄깃한 국수 가락의 식감을 새콤달콤하면서 상큼 아삭하게 받쳐주는 깍두기의 맛,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아, 저 사람 참 연기 맛깔나게 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명품 조연이 있다. 깍두기 같은 역할로 관객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 주연 같은 역할을 하는 조연 캐릭터도 있다. 그래서 주연이 빛을 잃게 되기도 하지만, 주연의 역할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들도 많다. '국제시장', '도둑들', '7번방의 선물', '변호인', '해적' 등에 출연한 조연들은 주연보다 인상 깊게 내게 기억되는 배우다.

그들의 연기가 관객에게 스며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연의 역할에 결코 연연해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위치를 불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명작, 설록홈즈에 나오는 미스터 왓슨과 셜록홈즈의 관계가 그러하다. 홈즈는 매력 넘치고 천재적 두뇌를 가졌다. 하지만 대인관계나 성격에 약점이 많은 홈즈를 늘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은 다름 아닌 왓슨이다.

넉넉한 성품으로 면도칼처럼 예민한 탐정 홈즈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 주거나 협력하여 사건을 해결해 가는 왓슨의 역할이 더욱 돋보였던 작품이다.

세상에는 숨겨진 조연으로 남겨진 것들이 참으로 많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군주를 위해 빛나는 조연이 많았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태조의 창업을 설계한 정도전, 스스로 군주를 선택한 하륜은 태종을 보좌하여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뿐 아니다. 왕과 중신들 사이에서 중용(中庸)의 미덕을 지키며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던 황희, 나라와 백성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며 세조의 오명을 치적으로 덮은 신숙주, 그들은 우리 역사 속에서 군주를 빛나게 한 명품 조연이었다.

새해의 첫 달이다. 곳곳에 희망의 꿈들이 넘쳐나는 달이다. 우리는 신년에 세운 소망이 보람의 꽃으로 활짝 피어나기를 소원하며 자신이 우뚝 서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의 연극도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따라야 하므로 주연배우만 아니라 조연의 역할이 받쳐 주어야만 가능하다. 잠깐 스쳐가는 단역도 있고, 악역의 역할도 있고 스텝의 헌신도 필요하다.

올 해는 각자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며 서로가 서로에 감사해하며 살아야 할 일이다. 나의 인생은 내가 주연이다. 주연이라 오만할 필요도, 조연이라 해서 비굴해 할 이유도 없다. 주연의 역할은 내가 최고가 되기보다 누군가의 삶에 조연으로 등장해 그들의 삶을 빛내 준다면 참으로 살맛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리라.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드러내지 않고, 열정을 녹여내는 수많은 조연 덕택일 것이다. 내가 주연이 되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삶이 아니라 누군가를 주연으로 세우기에 힘쓰는 아름다운 조연들이 만들어 가는 한 해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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