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오늘도 만남의 장소는 박물관이다. 외부 손님을 맞는 곳으로, 청주문화를 알 수 있는 시공간으로 제격이다. 오래된 물상과 문화유산을 좋아하는 성향도 한몫했으리라. 본의 아니게 시간이 맞지 않아 기다려도 서로에게 마음의 부담이 없는 장소이다. 여하튼 전시도 보고 지인도 만나니 일거양득 아닌가. 박물관의 풍경 또한 사계절 운치가 넘쳐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박물관 찻집에 앉아 유리창으로 스민 따스한 햇볕과 계절의 정취를 어찌 말로 다 하랴.

국립청주박물관의 지붕이 독특하다. 그 앉음새와 모습이 박물관답다. 우회도로에서 박물관 지붕을 바라보면, 마치 오래된 화석 공룡의 등뼈가 누운 형상이랄까. 내가 박물관을 무시로 찾는 건 전시된 문화유산이 주는 고아한 느낌도 좋지만, '박물관'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고졸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품고 싶어서다. 이런 감정이 살아난 건 작가가 되어 문화재 관련 글을 쓰면서부터이다. 그리 보면, 만남의 장소도 삶의 환경이나 나이에 따라 다른 것 같다.

학창 시절엔 시내 중심에 자리한 용두사지철당간이나 중앙공원에서 지인을 만났다. 친구랑 철당간 옆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것으로 마냥 행복한 시절의 이야기다. 세월은 흘러 구심은 낙후되어 극장은 사라지고, 공원은 노인들의 놀이 장소로 변해있다.

무형의 공간을 좌지우지하는 무리가 바뀌는 걸 보며 문화의 생명력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무엇보다 만남의 장소인 용두사지철당간이 우리의 문화유산 국보인 줄도 모르고 세월을 먹었으니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어디 그뿐이랴. 데이트 장소였던 중앙공원은 또 어떠한가. 공원에 건립된 수십 개의 기념비만 보더라도 청주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구한 문화유산의 숨결이 공원에 살아 숨 쉰다. 중앙공원은 청주문화유산의 보고이다. 일제강점기에 도로계획이란 명목하에 흔적 없이 부서지고 사라진 청주읍성과 관청, 우리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와해하고자 벌였던 불편한 진실을 모르고 있다. 역사든 문화든 바로 알아 정체성을 파악하는 일도 시급하다.

지금 국립청주박물관에선 ‘100년 전 청주 이야기’ 특별전이 열린다. '땅이 기름지고 호걸이 많았던' 100년 전 청주의 모습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전시이다. 더욱이 지하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는 향수 어린 남석교가 인상적이다. 육거리 전통시장 아래 묻힌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 청주의 귀한 보물을 땅속에 두고 긴 설전을 벌이고 있단다. 먼 미래를 보는 혜안이 있다면, 결코 저리 남석교를 두고 보진 않으리라. 돌다리가 하루빨리 수면 위로 떠올라 우리의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길 바라고 원한다.

문화유산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삶이 문화로 남는 것이다. 엊그제 당진과 인천에서 찾아온 문우와 박물관에서 만나 청주문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이어 며칠 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을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건, 바로 문화의 힘이 아닐까 싶다. '한없이 가지고 싶은 높은 문화의 힘'을 강조한 백범 김구 선생님 말씀처럼 청주시민의 염원이 미술관으로 탄생한 것이다. 차후 만남의 장소로 미술관을 점찍어 놓고 있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