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윤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주역에서 ‘중부괘’를 설명하는 글에는 돼지를 물고기와 함께 무지한 동물의 대표로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돼지는 조급하고 물고기는 사리에 어두워서 이러한 돼지와 물고기에게까지 감동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사람의 신의가 그만큼 진실하다는 것이다.

산림경제 ‘식기(食忌)’의 기록에도 물에 뜨는 돼지고기는 먹으면 안 되고, 메밀과 함께 하면 머리가 빠지며, 쇠고기와 같이 먹으면 촌백충(寸白蟲)이 생긴다고 하였다. 여타의 문헌에서도 돼지의 용도는 가장 미천하고 하찮은 것이나 소인을 의미하는 것에서부터 불순한 탐욕을 부리는 대상, 왜적과 오랑캐를 빗대어 쓰는 부정적 이미지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관상학에서도 돼지가 마냥 좋은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심술이 올바르지 않고 탐욕스러운 인상을 시시(豕視)라고 일컬었고, 중국 최초로 뇌물죄를 선고받아 죽은 춘추시대 대부인 양설부도 돼지상을 지닌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돼지와 관련한 속담도 한결같이 부정 일색이다. 이렇듯 돼지에 대한 이미지가 고약하게 묘사된 원인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너무나 친근해서 나오는 만만함(?)의 또 다른 표현이거나 호사가들의 시샘이 섞인 의도적 폄하이지 않을까.

돼지는 인간의 삶과 함께 해온 친숙한 동물이다. 집에서 기를 수 있는 소와 말, 양, 닭, 개와 더불어 육축(六畜)의 하나로 불렸으며, 동춘당 송준길은 천산(天産)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농경사회의 특성상 제의의 희생양이자 길조를 부르는 영물로도 꾸준히 대우받아 왔다. 후덕한 생김새로 인해 다산과 풍년을 상징하여 재물과 복을 불러온다는 믿음은 너무나 당연시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돼지 입에다 돈을 물려 연신 절을 올리기 바쁘며, 죽어서도 웃는 돼지가 더 높은 몸값을 받는 현실이 되었으니, 꿈에서라도 간절히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황금빛 기운을 받아 시작한 기해년(己亥年)이 일주일을 넘어가고 있다. 십간에서 '기'는 음의 기운인 땅을 의미하여 황색(黃色)을 나타내고, 십이지의 돼지인 '해'와 어울려서 36번째 간지인 '황금돼지'로 탄생한 것이다. 민속학에서는 서양의 양력과 십이지의 띠가 잘못 연결됐기 때문에 입춘이 지나야만 기해년이 맞다며 어깃장을 놓지만,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새해 황금돼지의 기운을 받으려는 국민들의 염원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라와 경제가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흔히 오지 않는 황금돼지의 해를 맞아 모두에게 재복(財福)을 내려주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미지 변신도 꾀할 겸 황금빛 돼지의 기운이 국민들에게 밝은 서광으로 비추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빛은 장소나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귀천을 가리거나 빈부에 따라 그 빛을 달리 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공도(公道)를 따라 사회의 음지나 궁벽진 이웃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전달해줄 수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실언한 것을 지키기 위해 돼지고기를 먹여 약속을 지킨 것처럼, 황금돼지도 올해는 우리에게 다복(多福)을 내려준다고 약속을 하지 않을까 스스로 믿어본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