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응… 日유학시절 항일비밀결사 ‘33회’ 조직
귀국후 고향 충주로… 민족운동·창작활동 매진
권태응 선생은 충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문학에 재능이 있었고 음악과 운동을 좋아했다. 1932년 충주공립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한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 전문부 문학과로 유학을 떠나 항일비밀결사를 조직하게 된다. 권 선생이 조직한 항일비밀결사 모임은 경성제일고보 33회 동참모임인 '33회'라는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제이빈핍물어', '유물변증법 독본' 등의 책을 읽거나 '허무적 관념의 비판', '일본자본주의의 여러 문제' 등의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비밀결사 활동을 해오던 그는 1939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스가모형무소에 갇혔으나 1년 뒤 폐결핵으로 풀려나게 된다. 도쿄 시내 제국갱신회에 거주지를 제한당하고 와세다 대학에서 퇴학을 당한 권 선생은 귀국해 인천 적십자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다 고향인 충주로 내려왔다.
고향에 내려와 농업에 종사한 그는 야학과 소인극을 통해 민족운동에 동참했으며 아동들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창작활동에도 매진했다. 또 그무렵 동시를 쓰기 시작해 1948년 '감자꽃'이란 동시집을 내기도 했다. 애국과 항일의식이 담겨 있는 감자꽃은 일제의 창씨개명에 반항하려는 의도를 갖고 지은 작품이다.
권태응선생은 2005년 항일운동의 공훈이 인정돼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다. 권 선생은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 피난 가는 길에 약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 병세가 악화되면서 1951년 3월 34살이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성현 기자 jsh900128@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