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서 ETRI 지식재산활용실장

특허의 가치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누군가가 특허에 관한 기술을 상업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가치를 말하기는 어렵다. 특허 소유자가 직접 사업화를 하는 경우라면 관련 시장에서 다른 경쟁자들이 그 특허기술에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특허권이다.

특허 소유자가 타인의 특허사용을 허락한다면,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다. 특허 서비스 산업 분야는 특허사용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근거한다. 이 분야에서 가치란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정보들이 서로 통합됐을 때에야 실현 가능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정보통합은 특허 전체를 놓고 보자면 극히 일부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더욱이 기술이 고도로 집적되는 추세에 따라 특허의 사용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때때로 수백만 불의 비용이 들어가기도 하는 반도체 칩 역설계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즉 특허침해조사는 많은 경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이에 반해 스마트폰에 탑재된 LTE, Wi-Fi 등과 같은 표준기술 분야는 특허사용여부 확인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표준기술의 규격이란 공개돼 있고 제품은 그 규격을 준수해야만 한다. 만약 어떤 특허가 표준 규격 내용과 일치한다면(표준특허), 그 제품은 그 특허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그리 간단해진 것은 아니다. 표준특허의 경우 상대적으로 공개된 정보가 많아서 표준특허 한 건의 가치를 따질 때 관련 표준특허 전체의 규모를 함께 고려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상당한 규모의 전문인력을 투입해야만 가능한 작업이어서 현재까지 어떤 분야에서도 이런 작업이 합리적인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채로 진행된 사례는 없다. 여기에 덧붙여 전체 특허 중 실제 사용되는 특허의 비율은 5%에 불과하며 1%의 특허가 전체 특허 가치의 90%를 차지한다는 통계 수치까지 접하고 나면, 특허 가치 불확실성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허 비즈니스에서 불확실성은 위험이자 기회인 동시에 특허의 가치를 극도로 불안정하게 한다. 수천억 원의 배상판결을 받았던 특허가 갑자기 무효로 되는 일이 드물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정보의 통합이란 거래 당사자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의 범위 내에서 그 수준에 맞게 이뤄질 뿐이다. 글로벌 기업 간에 있었던 천문학적 규모의 특허 로열티 지급 계약이든, 몇만 불짜리 특허 양도 계약이든 모두 그렇다. 이대로 좋은 걸까? 최근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야의 기술 발전 수준은 이 분야의 불확실성이 정말로 불가피한 것인지에 대해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정보의 통합은 최대화되고 불확실성은 최소화돼야 한다. 그래야 특허 비즈니스 시장에서, 나아가 R&D 혁신 생태계에서 기회주의자들이 줄어들고 혁신에 기여하는 참여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특허란 결국에는 정당한 배분에 관한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