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원대 대작 잇단 흥행 실패에 영화산업 위축 우려

▲ [쇼박스 제공]
▲ [쇼박스 제공]
▲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제공]
▲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제공]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대마불사' 안 통했다…12월 한국영화 점유율 7년 만에 최저

100억원대 대작 잇단 흥행 실패에 영화산업 위축 우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한국영화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대마불사'(大馬不死) 공식은 올해 통하지 않았다. 100억원대 상업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쓴맛을 보면서 영화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국영화에 대한 잇단 실망감은 관객 이탈로 이어졌다. 이번 달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역대 12월 가운데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 12월 한국영화 점유율, 50% 밑으로

3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달 1~29일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47.2%를 기록했다. 12월이 이틀 남았지만, 지금 추세라면 47.0% 안팎에 머물 전망이다.

'강철비', '신과함께', '1987' 등이 흥행하며 한국영화 점유율이 78.2%에 달했던 지난해 12월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줄어든 셈이다. 특히 한국영화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12월 시장을 외화에 내준 것은 2011년(37.4%) 이후 7년 만이다.

올겨울 야심 차게 선보였던 '마약왕', '스윙키즈' 등 대작들이 고전한 탓이다. '스윙키즈'는 지금까지 113만명, '마약왕'은 175만명을 동원했다. 'PMC:더 벙커'는 개봉과 동시에 사흘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나 전날 '아쿠아맨'에 정상을 내줬다. 누적 관객은 78만명. 세 작품 모두 손익분기점은 400만명가량이다.

12월 성수기 시장이 주춤하면서 올해 연간 극장 관객 수도 2억1천550만명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2억1천987만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지난해보다 400만명가량 줄어든 수치다.

◇ 진부한 소재·캐릭터…물량 공세도 안 통해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고, 흥행 감독과 흥행 배우들이 뭉친 화제작들이 올해는 대체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100억원대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는 총 14편. 이 가운데 극장 관객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독전', '신과함께 2', '공작', '안시성' 등 4편뿐이다.

거액의 제작비가 든 영화들의 공통점은 시대극이라는 점. 미술이나 세트, 의상 등 그 시대를 구현하려면 큰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안시성', '창궐', '조선명탐정', '물괴', '마약왕', '스윙키즈' 등이 대표적이다. 시대극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액션이나 코미디, 휴먼 드라마를 가미한 복합장르 영화가 많았다.

영화계 관계자는 "올해 유독 시대극에 2~3가지 장르를 혼합한 시도가 많았지만, 관객의 취향을 맞추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흥행코드에만 기댄 종합선물세트식 연출이나 스타 배우에 의존한 진부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지닌 작품들도 외면받았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참신한 기획이나 스토리 없이 물량 공세만으로는 관객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해였다"고 평했다. 전찬일 평론가는 "의미 있는 기획을 한 작품들도 많았지만, 스타를 앞세운 출연진을 비롯해 연출, 배급 방식 등은 변화한 대중의 기호를 맞추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배급사들이 추석과 겨울 성수기에 대작을 동시 개봉하는 '치킨게임'을 벌인 것도 흥행에 독이 됐다. 대형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추석과 겨울 시장까지 3개월 만에 출혈 경쟁이 재현된 것은 처음 본다"면서 "배급사 입장에선 제작비 회수를 위해 통계적으로 검증된 성수기에 들어가려다 보니 치킨게임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관객·자본 이탈로 한국영화 산업 위축" 우려

대작 영화들의 잇따른 흥행 실패는 영화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견 제작사 대표는 "큰 예산이 흥행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투자자들도 알게 되면 자본 유입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올해 여파가 향후 몇 년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다른 영화계 인사는 "가장 무서운 점은 한국영화에 실망한 관객들이 '역시 할리우드 영화가 더 좋구나'라며 한국영화를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각 배급사는 새해에는 100억원대 작품을 올해보다 확연히 줄였다. 올해 '곤지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마녀', '완벽한 타인', '암수살인', '보헤미안 랩소디' 등 깜짝 흥행한 작품처럼, 시기와 상관없이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내실 있는 작품 위주로 라인업을 짜고 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소재 면에서 참신하고 다양한 30억~50억원대 작품이 많이 나와야 영화산업 전반의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블록버스터 제작 역시 위축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화계 관계자는 "블록버스터가 흥행하면 1년에 1~2편 영화를 보는 관객이 극장을 더 찾게 돼 시장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면서 "다양한 중소 영화들이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시장 규모를 키우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내년에 월트디즈니를 중심으로 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슈퍼히어로물과 가족 애니메이션을 앞세워 세계시장 공략 채비를 하는 상황이어서 연간 한국영화 점유율이 절반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해 연간 한국영화 점유율은 '신과함께' 1, 2편 등의 흥행에 힘입어 12월 29일 기준 51.1%를 기록했다. 2011년부터 8년 연속 과반을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2014년(50.1%) 이후 최저 수준이다.

fusionjc@yna.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