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신(身)이니, 풍채가 건장한 것을 말한다. 둘째는 언(言)이니, 언사가 분명하고 바른 것을 말한다. 셋째는 서(書)이니, 필치가 힘이 있고 아름다운 것을 말한다. 넷째는 판(判)이니, 글의 이치가 뛰어난 것을 말한다. 이 네 가지를 다 갖추고 있으면 뽑을 만하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신(身)이란 관상(觀相)을 일컫는다. 사람의 관상을 볼 때 포인트는 눈에 있다. 정기(精氣)가 눈에서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면 총기는 있지만 장수(長壽)는 못한다고 본다. 관상을 볼 때 또 하나의 포인트가 찰색(察色)이다. 얼굴의 색깔을 보는 것이다. 얼굴 생김새와 윤곽은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얼굴은 색깔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신 다음에는 언(言)이다. 언어란 그 사람이 말을 얼마나 조리 있게 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조금 깊게 들어가면 목소리의 색깔을 분석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관상불여음상(觀相不女音相:관상보다 음성이 더 중요하다)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목소리는 인물 됨됨이를 판단할 때 근본적인 자료로 판단된다.
서(書)는 글씨다. 좁은 의미로는 글씨체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문장력을 말한다. 요즘이야 붓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 자판을 통해 글을 쓰는 세상이라 글씨체는 별 의미가 없다. 대신 문장력은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판(判)은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이판(理判)이고 하나는 사판(事判)이다. 이 둘을 합쳐 흔히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고 한다. 이판사판은 불교의 ‘화엄경’에서 유래했다. 불교경전 중 최고의 경전이라 일컬어지는 화엄경에서는 인간사의 범주를 이(理)와 사(事)로 파악한다. 이는 본체의 세계이고 사는 현상의 세계다. 이(理)는 눈에 안 보이는 형이상(形而上)의 세계이고, 사(事)는 눈에 보이는 형이하(形而下)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름하여 선사판(先事判) 후이판(後理判)이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운영, 前대전둔산초교장 박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