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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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신파·애국코드…그래도 눈물나는 '말모이'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참신한 시도가 돋보인다거나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이야기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흐른다. 처음 보는 영화인데 분명 어디선가 본듯하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될 신파 때문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이 곳곳에 포진하고, 애국·애족 코드를 자극하려고 애쓴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속 보이는 수작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보지만, 어느새 눈시울은 붉어지고 만다. '말모이'는 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영화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각색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조선어 사용 금지 정책을 어겼다는 핑계로 조선어학회 한글학자 33인을 체포한다.

이들은 모진 고문을 받은 끝에 16명이 수감됐고, 12명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다. 수감된 한글학자들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석방됐으나, 이윤재와 한징은 옥고를 치르던 중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윤계상이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을 맡았고 유해진은 조선어학회 심부름꾼이자 까막눈인 '김판수'를 연기한다.

판수는 경성제일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덕진'의 학비 마련을 위해 부잣집 도련님 가방을 훔치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다니던 극장에서도 해고된 판수는 조선어학회에 심부름꾼으로 취직하려고 하지만 하필 학회 대표가 가방 주인 정환이다.

정환은 전과자에다 까막눈인 판수를 꺼리지만,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판수는 한글을 떼는 조건으로 취직에 성공한다.

한편, 조선어학회는 10년 넘게 공을 들인 우리말사전 편찬을 앞두고 전국 한글학자를 한 자리에 모아 공청회를 열고자 하지만 일본은 이를 눈치채고 감시망을 좁혀온다.

초반은 류정환과 김판수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까막눈인 판수는 한글을 읽히고 나름대로 맡은 일을 성실히 하지만 정환은 판수를 오해하고 만다. 쌓인 감정이 거세게 부딪힌 후 두 사람은 믿고 의지하는 동지로 발전한다.

정환과 판수가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유해진 표 코믹 연기가 빛을 발한다. 자칫 초반 흐름이 무겁거나 지루해질 수 있었으나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해진의 구수한 연기가 웃음을 자아낸다.

중반부에 이르면 우리말 사전 편찬 작업이 서사 중심으로 떠오른다. 조선총독부는 본격적으로 마수를 뻗쳐오고 조선어학회 내부 분열을 유도하지만, 회원들은 기지를 발휘해 공청회를 개최하고야 만다.

굳이 기시감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전형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취했지만, 객석에서 스크린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는다.

이는 배우가 명연기를 펼쳤다거나, 감독 연출이 뛰어난 때문이 아니라 소재 자체가 가진 힘에서 비롯된다.

우리 말과 글을 없애려는 일본의 탄압은 모질었고, 꿋꿋하게 한글을 지켜낸 학자들은 올곧았다. 영화는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이 거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말과 글이 사라졌을 터인데 애국·애족 코드나 신파를 언급하며 고고한 척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손발이 조금 오그라든다 한들, 또 눈물 몇 방울 흘리는 것이 대수겠는가.


엄유나 감독은 "우리 말과 글이 금지된 때, 불가능할 것만 같던 우리말사전을 완성하기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함께한 많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느낀 감동을 온전히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는 후손들이 해야 할 숙제도 일깨운다. 조선어학회는 광복 이후 천신만고 끝에 되찾은 원고를 바탕으로 1947년 '조선말큰사전'을 출판한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김두봉 주도로 '조선말사전'이 편찬됐다.

분단 이후 70년이 흐르면서 남과 북의 말과 글은 상당 부분 달라졌다. 남북은 2005년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을 시작했으나 이후 남북관계가 틀어지면서 큰 진척을 보지 못했다. 휴전선에 가로막힌 민족 언어유산을 집대성하는 작업은 후손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2019년 1월 9일 개봉. 12세 관람가.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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