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 선생의 '삼국사기'보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가 문화적, 사회적 가치 면에서 높게 평가되는 것은 삼국사기가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 정사체임에 반하여 삼국유사는 스토리텔링이 담긴 야사체 성격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사기'가 1965년 보물 41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국보 306호로 변경된 것을 보면 지금처럼 스토리텔링 개념이 확립되기 전에도 이야기의 중요성은 이미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화, 전설, 설화 등이 풍부한 '삼국유사'는 일견 건조하고 밋밋해 보이는 기전체의 '삼국사기'에 비해 더 흥미로워 보인다. 이야기의 중요성은 그만큼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가 보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옛날이야기, 유치원에서 듣던 동화 모두 '스토리텔링'의 모태가 되는 콘텐츠로서 지금처럼 '시장'을 염두에 둔 '상품'으로 인식되기 까지 그 뿌리는 같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 카페가 엄청나게 증가한 것도 거기서 파는 음료 자체에 대한 선호라기 보다는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욕구의 발현이 아닐까. 이른바 '카공족'들도 책과 노트북을 펴놓고 카페에 앉아있지만 결국은 그 또한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펼치는 형상이니 이래저래 현대사회에서 '이야기'의 중요성은 높아만 간다.

'이야기'는 이제 중요한 문화상품의 원천이 되었다. 영화 연극 뮤지컬 만화 드라마 캐릭터 같은 문화산업 중요 장르의 성패는 결국 이야기의 충실성과 공감 여부에 달린 만큼 재미있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맛깔나게 버무려 담는 능력은 나날이 중요해진다. 자기소개서에서 스토리텔링 개념 도입이 장황한 스펙 자랑보다 설득력이 높은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부산역 앞 초량동 일대에서는 '이바구'(이야기의 사투리) 개념을 이용하여 지역활성과 관광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좁은 골목 사이로 자전거 인력거<사진>에 손님을 태우고 입담 좋은 안내사가 이바구길 곳곳을 돌며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하여 소통과 공감 그리고 힐링이 이루어지는 선순환 효과의 현장이 거기 있었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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