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권남 청주시 금천동주민센터 주무관

연말이면 퇴사하는 선배들 고별사로 메일함은 클릭의 연속이다. 내 공간에 불쑥 들어온 그들이지만, 왜 그토록 마지막에 흔적을 남기려 하는지 그 속 빛깔을 헤아려 본다. 왜 그들은 겨울바람을 등에 지고 화려하지 않은 고백을 하려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유종지미(有終之美). 좋은 기억이나 마지막 기억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모습이 마치 처음 그 모습이기를 바라면서….

일반적으로 태도 형성엔 초두 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회상엔 최신 효과가 크게 작용한다. 물러나는 자신의 뒷모습이 앞모습으로 투영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에게 낱말이나 숫자 목록을 기억하라고 하면 흔히 처음과 마지막 것을 기억한다. 처음 항목을 잘 기억하는 경향은 초두 효과(Primacy effect), 맨 마지막 것을 잘 기억하는 경향을 최신 효과(Recency effect)라고 한다. 처음 항목은 암기를 통해 장기 기억 속으로 옮겨지고, 마지막 항목은 여전히 단기 기억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간은 최근에 일어난 일이나 경험을 과거의 사건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끝이 좋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화려한 첫인상과 중간 인상도 시간이 쳐놓은 그물 안에서는 월식이 된다.

마지막이 돼서야 거울 속 자아를 발견한다. 그래서 마지막 달력을 넘기기 전에 끝맺음을 좋게 하려고, 뒷모습을 밝게 보이려고 그토록 역설하는 것이 아닌가.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삶에 관한 한, 이 말은 대부분 맞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라는 영국 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희곡이다. 물론 작품 결말도 해피엔딩이다. '나무라도 고목이 되면 오던 새도 아니 온다, 깊던 물이라도 얕아지면 오던 고기도 아니 온다'라는 속담처럼 시작보다 끝이 더 아름답도록 매사에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마지막 모습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아닌 사두용미(蛇頭龍尾)이길 바란다. 과정은 항상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큰 영향을 준다. 우리는 같이 일하는 동료로부터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험로를 지나 좋은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변화무쌍한 얼굴을 봐야 한다. 마지막에 보이는 그들의 얼굴이 진짜 본연의 모습이기를 바라면서. 자리에 따라 사람이 변한다고들 하지만 그 자리가 공허해지면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인생에 있어서 빛나는 순간이 있다.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그게 오늘이라고 생각된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未生)'에서 오상식 차장은 계약직 신입사원 장그래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준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글귀는 '장그래, 더할 나위 없었다 YES!' 뒷모습이 없는 사람은 없다.

시간은 리콜되지 않는다. 옆에 있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고 소중한 기억이다. 가끔은 기억의 창고에서 그들을 꺼내어 털어주고 만져주고 안아주자.

기억의 창고엔 기억만 사는 게 아니라 거미도 살고 있으니까. 옆에 있는 그들에게 짧지만 행복한 카드를 건네 보자. 오 차장이 장그래에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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