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예산을 확보하려 중앙정부를 찾아가도 충북 출신이 없어 힘들다. 그러니 자사고(자율형 사립고)를 만들어 인재를 길러야 한다.'

고교 무상급식 시행방법과 분담률 때문에 한동안 논란이 벌어졌다. 위 작은따옴표로 인용한 말은 그 와중에 난데없이 나온 명문고 육성 또는 인재양성 주장의 골자다. 진단과 대책이 적합하지 않고 논리의 연결이 빈약하다. 뒤집어 표현하면 이렇다. '자사고를 만들어 유명대학을 보내면 그들이 고위관료가 되어 충북에 예산을 넉넉히 확보해 주는 인재가 될 것이다.'

성적 최상위권 학생이 진학하는 자사고가 유명대학을 많이 보내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학생들이 공직에 들어가고, 수십 년 뒤 행정부 고위 공무원이 되어, 고향을 위해 예산을 쏟아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가능성이 낮은 인과관계를 억지로 갖다 붙이는 주장에 불과하다. '바람이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는 일본 속담과 흡사하다.(한 번 찾아보시길 권한다.)

자사고는 점차 일반고로 전환하는 추세다. 얼마 전에는 국가교육회의가 외고 등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고 자사고도 흡수하는 특권고교 2단계 전환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자사고, 특목고 확대는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입시를 기준으로 한 명문고 육성론, 또는 고위관료를 중심으로 보는 인재 양성론은 당분간 계속 될 전망이다. 입시 명문고가 명문대학에 학생을 많이 입학시키고 있고, 정부의 파워 엘리트 그룹에 특정 대학 출신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입시 명문고는 점차 허물어질 것이다. 내신 성적과 학교생활을 기반으로 한 수시전형이 입시 전체의 4분의 3에 이르기 때문이다. 넓은 문을 두고 굳이 상위권 학생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학교를 택할 까닭이 없다. 이른바 파워 엘리트 그룹의 영향력도 점차 약화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진전에 따라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파워 그룹도 더 다양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검색엔진을 자랑하는 모 사이트에서 몇 가지 키워드를 입력해 보았다. '명문고등학교'를 넣으니 269만 건의 콘텐츠가 검색된다. '입시명문고등학교'는 명문고의 20% 정도인 56만 건이 나온다. '명문대학교'는 460만 건이다.

나름대로 의미를 찾아보자면 이렇다. 우선, 사람들은 '명문학교'에 관심이 매우 높다. 그리고 '명문고'보다는 '명문대학교'에 훨씬 더 관심이 있다. 마지막으로, '거의 대다수 사람들은 '명문고'를 '입시명문고'로 정의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명문고의 모델로 삼겠다는 인근의 한 학교 이야기도 들었다. 자사고가 아닌데 이른바 명문대 진학 숫자가 전국 톱이다. 대단하고 화려하다. 반면 그늘이 짙다. 전국 0.3% 학생들을 뽑아 3년간 기숙사 생활을 시킨다. 낮에는 학교 교사, 밤에는 입시 강사들이 가르친다. 해마다 졸업생의 절반이 재수의 길로 들어선다. 실적은 재학생, 재수, 삼수 등을 합한 숫자다.

명문고를 육성하자는 데 반대할 일이 없다. 다만 입시 명문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또 그 명문이 아이들의 꿈을 억압하고 어른들의 욕망을 찍어내는 곳이 아니라면. "나는 사립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부산의 한 초등학생이 쓴 '여덟 살의 꿈'이라는 동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