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우 청주 고인쇄박물관 주무관

얼마 전 제118회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노벨상 발표로 온 세상이 들썩이고 곧 이어 열리는 시상식은 전 세계 학자들의 축제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상자들의 업적을 보면 주요 인류 학문의 발전사를 엿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의미가 있는 상이다.

'직지의 고장' 청주시에서도 기록유산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시상식이 열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유네스코 직지상'이 그 주인공이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고 인류 공동의 기록유산 보존과 접근성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2004년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기록유산 부분의 최초이자 유일한 상이다.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선정한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기록유산 보전과 연구에 이바지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된다. 시상식은 청주에서 격년제로 개최되며 상장과 상금 3만 달러가 주어진다.

올해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 개막식과 함께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무장단체로부터 이슬람 고문서를 지켜내고 보존에 기여한 아프리카 말리의 NGO(비정부기구) 단체 '사바마-디(SAVAMA-DCI)'가 일곱 번째 직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무려 26개국 33개 기관 및 개인이 후보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직지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권위를 보여준다.

현재 유네스코에서는 특별상 1개를 포함해 교육, 자연과학, 문화, 사회과학,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등 5개 부문에서 총 23개의 국제상(prize)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공식적인 심사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하위 개념의 소위 어워드(award)라 불리는 일반상과는 엄연히 구분된다. 우리나라가 지원하는 유네스코 상에는 문해 분야 2대 상 중 하나인 세종대왕 문해상과 기록유산 분야의 직지상이 있다.

직지상은 유네스코 주요 활동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유네스코 4대 상으로 선정되었으며 가시성, 청렴성 그리고 부합성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평과를 토대로 2015년 만장일치로 집행이사회의 연장 승인을 받았으며 곧 두 번째 연장을 앞두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에서는 상의 권위를 높이는 전략으로 중복되는 분야의 상들을 합치거나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상금을 증액시키는 방법 등을 권고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기록유산 분야의 유일한 상인 직지상의 권위를 보다 높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상금 증액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역의 민간 기업이나 단체와 협력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사가 후원하는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은 유네스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또한 수상기관간 지속적인 대화 증진과 협력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직지상 2.0 기록유산 라운드테이블을 보다 미래지향적 가치를 함께 모색하기 위한 유네스코 정기포럼 형태의 국제회의로 승격시키는 방법도 있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자 세계기록유산분야의 유일한 상인 유네스코 직지상은 우리가 마땅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가치 있는 또 하나의 유산이다. 직지상을 국제적으로 더욱 발전시키고 권위를 높이다 보면 언젠가 세계기록유산 하면 자연스럽게 '직지'를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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