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대전사무소] 이야기로 풀어보는 인권위 결정례

금요일 밤, 인권희 씨는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였다.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이 나오자 방에서 만화책을 보던 아들 녀석이 달려 나왔다. 그러고는 인권희 씨 옆에 붙어 앉았다.

“나도 볼래.”
“너 자야할 시간이잖아. 얼른 가서 자.”
“싫어. 내일 학교 안 가니까 오늘 늦게 잘 거야.”

인권희 씨와 오름이가 아웅다웅 하는 사이 광고가 끝나고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인권희 씨는 오름이를 방에 들여보내는 걸 포기하고 함께 TV를 봤다. 프로그램은 연예인과 그의 매니저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예능 방송이었다. 패널인 연예인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배우 한 명을 소개하자, 새로 합류한 배우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게스트로 참여하게 된 배우 이유명입니다.”

배우 이유명이 인사를 마치자 동료 연예인들이 그가 예전에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실재 있었던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로 발달장애인이 주인공이었다. 

“이유명 씨! 그 영화 주인공처럼 인사 한 번 해주실래요?”

단발머리 여자 연예인의 제안에 동료 패널들이 벌써부터 웃기 시작했다. 이유명씨는 잠시 자세를 가다듬더니 자신이 맡았던 주인공의 표정과 말투를 흉내 내어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패널들 모두 재밌다는 듯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엄마! 엄마도 저 영화 봤어? 주인공이 바보야?”
“응. 엄마도 그 영화 봤는데 주인공이 바보가 아니라 발달장애인이었어.”
“발달장애인이 바보야?”

‘발달장애인이 바보냐’는 아이 질문에 인권희 씨는 해당 장면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장면을 보면서 발달장애인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같아 불편했던 참이었다. 인권희 씨는 오름이처럼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모르는 아이와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보다는 장애를 이유로 특정한 사람에 대한 차별적 표현이나 언행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했을 때 인권희 씨가 시청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행동은 특정 장애인을 직접 지칭하거나 유출할 수 있는 표현이나 행동에 해당되지 않고, 따라서 차별 행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인권위는 발달장애인의 말투를 흉내 내는 행동으로 발달장애인을 웃음거리로 삼은 것은 불특정 다수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을 굳힐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로 인해 장애인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관계자의 불쾌감을 유발했다고도 보았다. 

때문에 방송사와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장애인의 인격과 가치를 손상시키는 차별적 표현과 행동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장애인의 권익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아울러 장애인을 희화화할 소지가 있는 표현과 행동, 또 그것으로 인해 시청자들이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갖는 방송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도록 방송국은 물론이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를 상대로 관심과 주의를 촉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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