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공동캠페인 '러브 투게더'] 23 몽골가족 - 2편
한국·몽골서 모두 외면 결혼후에도 고통은 계속 “아이들은 겪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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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투데이 최윤서 기자] 그가 한국에 처음 온 2002년은 ‘붉은 악마의 해’였다. 월드컵 열기로 나라 전체가 들썩였고 사람들은 애국심에 열광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30·가명) 씨는 몽골에서부터 이혼한 엄마가 살고 있는 한국에 왔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타국생활이 두려웠지만 그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엄마가 있다는 이유 하나에서다. 몽골에서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엄마는 그 길로 돈을 벌고자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외로움, 고독, 상실감 온갖 검은 단어들은 어린 나 씨의 곁에서 떠날 줄 몰랐고 엄마의 그리움은 그를 결국 한국에 오게 했다. 그러나 그곳엔 한국말이 서툴렀던 몽골인 초등학생에 대한 친절과 관대는 없었다. 또래 아이들은 그를 따돌렸고, 엄마는 바빴다. 나 씨는 그렇게 3년을 버티다 다시 몽골로 갔다. 몽골에도 행복은 없었다.

몽골에서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새어머니와 살게 된 나 씨의 재혼가정 자녀로서의 생활은 한국만큼 어려웠다. 그를 반기는 곳은 한국에도 몽골에도 없었던 것이다. 지구에서 버려진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외로웠다. 그나마 이란성 쌍둥이였던 남동생에게 의지하며 살았다.

그렇게 몇 년을 몽골에서 보냈지만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제대로 된 한국어 교육을 받지 못했던 그의 유일한 소통창구는 K-POP이었다. 한국 가요를 따라 부르며 한국말을 익혔고 외로움을 위안 받았다.

나 씨가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은 22살 때다. 친구를 따라 몽골인 모임에 나갔고 외로웠던 그에게 현재 남편은 한 줄기 빛이 돼 줬다.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된 나 씨는 7살 첫째부터 4살, 2살 막내를 둔 삼남매의 엄마가 됐다.

가족을 꾸리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다. 젊은 초보 엄마에겐, 그것도 타국에서의 육아는 그야말로 전쟁만큼 지독했다. 우울증은 심해졌고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둘째아이를 몽골 친조모집으로 보내게 됐다.

잠깐이었지만 나 씨는 여전히 미안함에 눈시울을 붉힌다. 나 씨는 “내가 당했던 어릴 적 따돌림을 우리 아이들도 겪을까봐 그게 제일 두렵고 걱정이 된다”며 “아직은 어려서 괜찮지만 초등학교,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언어장벽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 고민이 깊다”고 토로했다. <21일자 3편 계속>

최윤서 기자 cy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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