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보다 사회 변화 양상에서 조금씩 앞서가는 일본의 추세를 보면 우리가 대비해야 될 현안이 읽힌다. 고령사회에 관련된 문제에 있어 특히 그렇다. '폭주노인'(후지와라 토모미 지음)과 '과로노인'(후지타 다카노리 지음)이라는 책이 노인문제에 관한 현상 진단과 나름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흥미로운데 대처방안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두 책이 보여주는 고령사회의 전망은 대체로 어둡고 무겁다.

핵심은 노령층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라는 것인데 노인들에게는 단순직이나 청장년 시절에 하던 일을 그대로 지속하는 두 경우 외에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은 현실이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 아직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 80세가 넘은 택시기사가 숱하고 특히 정치권에서는 정년이나 나이 제한이 없는 탓에 노정객과 이른바 올드보이들이 나날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예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도 나름 의미있겠지만 노년에 접어들어 그간 체험하고 쌓은 경륜을 집약하여 보다 새롭고 창의적인 일에 매진하는 아름다운 실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나날이 발전하고 쇄신되는 사회상황에서 과거 경험과 노하우에 의지한 채 기존의 일을 답습하기 보다는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영역에서 지혜와 창의력을 경주하는 노인세대가 많아질 때 우리사회는 보다 역동적이 되고 젊은 세대를 이끌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기업 임원, 컨설턴트, 대학교수 그리고 수많은 베스트 셀러 저자라는 경력을 뒤로 하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커피를 재배하며 커피와인, 커피코냑 제조라는 새로운 분야에 매진하고 있는 김영한(70·사진) 대표의 도전정신과 의지는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 하다. 전형적인 화이트 칼러 생횔을 접고 우여곡절 끝에 제주에서 재배한 커피 생두를 발효하여 와인을 만들고 그 와인을 증류하여 코냑을 만드는 농부, 브라운 칼러로 땀흘려 일하는 사례는 '창의적인 실버'의 전형이 되지 않을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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