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신 충남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무관심이다.’ 스페인 배드민턴 유망주 캐롤리나 마린에 대한 기사다. 순수 비아시아계 선수로 20위권 이내의 유일한 선수인 그녀를 배드민턴계에서는 별종이자 아웃라이어라고 한다. 그녀는 ‘제도권 밖에서 성장한 점이 오히려 행운’이라고 말한다. 제도권의 무관심이 그녀의 능력과 창의적인 열정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BTS(방탄 소년단)의 성공 역시 정부의 무관심덕이라고도 한다. 만약 정부가 이들을 지원했다면 오늘의 성공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란다. 온갖 서류와 공무원의 간섭, 규제, 점수로 내 놓아야 하는 가능성, 실패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느라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웃픈 현실이다.

우리 주변에도 부모나 학교가 무관심했기에 성공한 사례는 의외로 많다. 그러나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며 학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이란 학생 개인의 능력을 발견하고 고양해 그들이 인간으로서 최고의 존엄성과 가치를 발현하도록 지도하고 돕는 것이다. 기울인 관심의 양만큼 아이들은 가치롭고 존엄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관심과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엄한 개체에게 주는 관심이 아닌 집단을 통제하기 위한 ‘교육적 관심’을 가장한 무관심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머리 색깔, 머리 길이, 바지통, 치마길이, 머리핀, 겨울점퍼 색깔, 화장품, 교복 타이나 리본, 정해진 답 따위를 규제하는 일로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을 놓치고 만다. 부모들조차 포기하고 어찌 못하는 것들 때문에 매일 아이들과 전전긍긍한다. 그런 것들로 아이들을 스캔하느라 정작 아이들의 눈에 왜 이슬이 맺히는 지, 아이들의 가슴은 무엇으로 설레는지 그리고 아이들은 제 친구들과 왜 그리 즐거운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운 것들은 무시하고 무관심하면 좋을 것들에 매달려 시간을 보낸다.

빨간 머리면 어떻고, 쫄졸이 교복바지인들 무슨 대순가? 우리 아이들이 저리 함박꽃처럼 안기는데.

요즘 학교에서 교사와 아이들은 서로 마주치지 않고 무관심한 것이 상책이다. 아이들은 정말 먼지만도 못하게 느껴지는 일로 잔소리 듣는 것이 싫고, 교사는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무례함과 황당함에 서로를 밀친다. 지금 시스템과 규정이라면 1000년은 걸려야 서로의 눈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안타깝게도 팔 할이 무관심이다. 지금으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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