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태 ETRI 미래전략연구소장

지난 1일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5G 이동통신 상용화를 개시하였다. 5G서비스 상용화로 축포를 날리던 날, 그동안 승승장구 하던 반도체 수출에 대해 우려할 만한 자료가 발표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1월 반도체 수출은 106억 8,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6% 늘었지만, 증가율은 2016년 1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동통신과 반도체 분야의 성공 뒤에는 정부와 민간의 집중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연구개발 성과의 향유는 오래 지속되고 있지 못하다. 기술진화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국가별 기술격차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 투자는 GDP의 4.55% 비율로 세계 1위, 총 연구개발비는 78조 8천억원으로 OECD 국가 중 세계 5위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질적 성장,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의 창출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이에 정부는 "국가연구개발 혁신방안"을 수립하여 과학난제 극복, 미래 신시장 창출 등을 위해 고위험 혁신형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 규모와 역량으로 볼 때 얼마를 투자하느냐 보다 어디에 투자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점이다.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의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NISTEP)에서 2018년 10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상위 1%의 논문 8만 5천건을 분석하여 구분한 총 895개의 연구영역 중 미국 802개, 영국 563개, 독일 500개, 중국 452개, 일본 299개, 한국은 200개로 나타났다. 이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연구영역 중 미국은 89.6%를 커버하고 있으나 한국은 22.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자료는 혁신성을 기준으로 연구영역을 4개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미국, 중국, 영국, 독일은 혁신성이 높은 스몰 아일랜드형 비율이 가장 높은 반면, 우리나라는 혁신성이 낮은 콘티넨탈형 비율이 가장 높다.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 연구개발의 문제는 연구영역의 범위가 협소할 뿐만 아니라 지속성과 안정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고위험 혁신형 연구개발 투자가 기존의 연구영역에서만 이루어진다면 과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성과가 많이 도출될 수 있을까,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성장 동력이 등장할 수 있을까 염려되는 부분이다. 연구개발을 통해 기존 지식을 증가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빠른 변화로 인해 불확실성이 높은 미래를 볼 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통해 다양한 씨앗을 찾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너무 일이 잘 풀려 불안할 때, 우리는 흔히 "기본으로 돌아가자", "본질에 충실하자"라는 말을 되새기곤 한다. 각 상황에 따라 "기본"이나 "본질"이 의미하는 바는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더욱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꼭 지켜야할 또는 명심해야 할 그 무엇이다. 연구개발에 있어서 지금 기본으로 돌아가자, 본질에 충실하자 라고 한다면, 그 무엇은 바로 다양성과 혁신성에의 투자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실패를 받아들이고 학습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기본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찾는다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는 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연구개발에 종사하면서 요즘처럼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생각나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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