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는 시집이 백만 권이나 팔린 때도 있었다. 신군부통치 시절, 검열을 피하기 위한 각고의 조탁으로 오히려 우리 시의 발전을 이룩했다는 역설도 있지만 컴퓨터가 본격화되기 이전, 책은 여전히 비중 있는 문화미디어인 동시에 지식과 정보가 수용, 유통되는 핵심적인 통로였다. 끝없는 빙하기가 이어지는 이즈음 출판계에서는 일만 부만 나가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다고 한다.

독서 기피, 저조한 도서구입 그리고 일상 곳곳에 스며든 책의 비중 약화는 이제 너무 광범위한 문화현상으로 굳어졌다. 그 이유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휴대전화 확산이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고 나날이 바빠지고 긴장이 더해가는 삶의 고단함 그리고 불경기의 여파로 인한 긴축모드에서 가장 먼저 문화비 지출을 줄인 탓에 도서의 생산, 소비는 심각한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book으로 불리는 전자책이 종이책의 상당부분을 잠식할 것이라는 21세기초의 전망은 상당 부분 어긋나고 있다. 10여년 안에 종이서적 시장의 30%정도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빗나갔다. 오늘도 여전히 숱한 책이 출판되고 대형서점에는 구매여부를 떠나 외견상 엄청난 인파로 북적인다. 편안하게 책을 보도록 소파와 책상을 비치한 서점의 배려로 오랜 시간 무료독서를 마친 고객들은 그 책을 다시 꽂아두고 혹 구입을 한다면 온라인 주문을 이용한다.

여러 사람이 돌려보면서 오염, 훼손된 서적은 결국 출판사로 반품되므로 서점으로서는 손해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서점에서 무료로 책을 읽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차편에서는 다시 스마트 폰이 쥐어져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버스, 전철, 열차 등 대중교통수단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외국의 경우도 비슷하다지만 그래도 버스 한 대, 전철 한 량에 소수라도 책을 든 승객이 보이는 풍경은 우리와 차별된다. 대중교통기관에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얇은 문고판 사이즈에 조금 큰 활자로 흥미로운 내용의 콘텐츠를 출판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지만 출판인들의 견해는 그 또한 부정적이었다. 그나마 e-book이 본격적으로 확산되어 휴대전화나 독서단말기로나마 책이 읽혀지기를 기대한다.

버스에서 노신사가 두꺼운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사진>. 그 얼마 만에 보는 모습이던가. 어떤 분인가 궁금해서 다가가 봤더니 영어책을 펼쳐든 외국인이었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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