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오규환 대전시 경제정책과장

끝과 시작은 동일 선상에 있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는 것은 끝과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다. 이 짧은 시간은 후회와 설렘이 교차하는 변곡점이기도 하다. 1년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지? 그러나 그것도 잠시, 폭죽이 터지면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해마다 반복되는 거창한 시작과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새해다짐은 후회를 불러온다. 이와 같은 병을 치료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는 유시유종(有始有終)이고 치료 시기는 지금이다.

유시(有始)는 시작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은 기분을 좋게 한다. 어떤 일을 준비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즐거운 상상은 없던 힘도 나게 한다. 문제는 과정이다. 희망과 열정을 가득 싣고 출발한 열차가 기관사의 태만으로 중간에 멈춰 설 수 있기에 이를 경계해야한다.

유종(有終)은 끝마무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어떻게 시작하는 가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끝을 내는 가로 평가된다. “마지막 마무리를 처음처럼 신중하게 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다”는 노자의 말은 소홀하기 쉬운 끝마무리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다. 실례로 과거 미국의 자동차 구매자들은 월요일에 출고되는 차는 되도록 사지 않으려 했다. 이유인 즉, 주말에 만들어지는 차는 다른 요일에 비하여 작업자들의 심리적인 이완으로 불량품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유시와 유종이 내린 각각의 처방에 법정스님은 한마디로 정의한다. ‘삶의 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맞는 말이다. 그때그때 바로잡는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일 년에 단 한번만이라도 반성의 시간을 갖는 다면 아쉬움만 가득한 과거에서 의미 있는 꽃을 피우지 않을까? 그것이 개인과 관련된 계획이든 아니면 호장생활에서의 업무와 관련된 일이든 반성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8년 전,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30년 친구인 담배와 이별을 선언했다. 그러나 금연의 천적인 술이 문제였다. 작심삼일을 겨우 넘겼지만 3개월 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해 말, ‘왜?’라는 질문에서 충격요법이라는 답을 찾았다. 군입대하는 비흡연자인 아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다짐하고 필자인 나는 금연할 것을 아버지의 묘 앞에서 약속했다. 아들과 아버지의 약속에 할아버지가 증인을 선 것이다. 이후 아들과 나는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한 번의 평가를 통해 얻은 의미 있는 성과다. 업무와 관련된 일도 마찬가지이다. 일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간 중간 또는 연말에 평가와 분석을 통해 성취감을 느낀다면 일하는 즐거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이해인 시인은 ‘한해를 보내면서 올리는 기도’에서 끝마무리를 이렇게 말한다. (중략) “지나온 시간을 반성하며 잘못을 아는 시간이 너무 늦어 아픔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음을 기억하게 하십시오.(중략) 새해 세운 계획을 헛되게 보내지 않게 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詩속에 나의 마음이 묻어있는 느낌은 왜일까? 아직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나 자신이 어디쯤 와있는지 종착역은 어떻게 도착하여야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지금 이 순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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