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과학포럼] 박상년 ETRI 성과홍보실 책임기술원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 부를 만큼 중요시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는 연구개발에 필요한 반도체 사진을 전자현미경을 통해 촬영하곤 했다. 이후 인화를 통해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한 장의 칩 사진으로 완성했다. 연구진은 필자가 찍은 사진을 분석해 연구 참고자료로 활용했다. 그렇게 시작하여 4M, 16M DRAM이 개발되었고 우리는 명실상부한 세계최고의 반도체 강국이 되었다. 이를 보면 필자도 뿌듯하다.

필자는 ETRI에서 연구성과의 홍보를 위한 사진을 담당하다보니 자연스레 연구원의 역사, 42년과 함께 했다. 입사시에는 경북 구미시 한국전자기술연구소에 들어가 1987년에 대덕으로 이전했다. 그때부터 연구원의 모습을 고스란히 사진 앵글에 담을 수 있었다. 물론 이전 사진은 부족해 연사를 발간하는 때가 되면 옛 모습을 담은 자료사진이 없어 많이 아쉽기도 하다. 당시 언론홍보를 위해선 사진을 촬영해 인화한 뒤 신문사에 들고 뛰어 다녔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렇듯 제공한 사진들의 제목도 이젠 아스라한 예전의 일들이 되었다. TDX, DRAM, 행정전산망 주전산기, CDMA, 4G LTE-A 등과 같은 사진들이 언론사에 제공되었고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바로 1996년 4월이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수성 총리가 연구원을 방문, CDMA 개통식이 열렸다. 아직도 핸드폰 개통식 사진은 우리나라 정보통신사에 빼놓지 않고 인용되는 대표사진으로 남아있다. 사진 한 장에 많은 에피소드와 역사, 연구원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철옹성 같기만 하던 코닥 필름과 후지필름이 역사의 뒤안길로 저무는 세상이 되었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필름 카메라는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젠 과거의 사진도 디지털로 깨끗이 변환해 얼마든지 보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고 축적이 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연구 성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일도 중요하다. 연구사진에는 연구원들의 노고와 땀과 열정이 배어있다. 연구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밤을 같이 지새운 많은 연구원들의 표정 하나 하나도 담고만 싶었던 게 필자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으로만 일반 국민들에게 알리고 공감을 얻는다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요즘엔 눈에 보이지 않는 SW, 콘텐츠, 통신기술을 담기 위해선 많은 고민 또한 필요하다. 찰나의 순간, 장면을 생생히 담고 싶은 욕심 때문이리라.

새로운 디지털시대를 맞아 점점 과거의 기록물들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아무리 디지털이 좋다 하더라도 과거의 아날로그를 회상하기 마련이다. 과거에 비해 촬영환경은 편리해 졌다.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모든 사람을 사진작가로 만들기에 충분해 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젠 시대를 기록하고 성과를 관리하는 축적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덜 힘들어 졌다는 생각이다. 이젠 기록물관리의 중요성 인식만 남은 것이다. 사진 관리인 원사(院寫)도 마찬가지다. 연구개발 사진은 연구성과 그 자체로도 중요하겠지만 결과물이 완성될 때까지 일어나는 과정도 또한 중요하다. 필자는 연구현장을 실시간으로 촬영, 기록하는 것이 역사의 보존이나 자료가치가 높다고 인식한다. 이젠 우리도 불모지에서 일어나 세계가 부러워하는 과학강국이 되었다.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기록하고 관리하며 축적하는 습관을 이제부터 길러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 선진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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