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대전사무소] 이야기로 풀어보는 인권위 결정례

정의 씨 꿈은 어려서부터 경찰이 되는 거였다. 유치원 때 경찰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을 보고 감명 받아서였다. 시민들을 어려움에서 구해낼 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구현을 위해 발로 뛰는 경찰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 내라고 하면 늘 경찰이라고 썼다.

중학교 때였다. 정의 씨는 다양한 직업을 탐색하길 바랐던 모친과 장래희망을 놓고 의견 대립을 한 적도 있었다.

“정의야! 세상에는 직업들이 엄청 많아. 꿈을 경찰이라고 못 박지 말고 다른 직업들도 알아보는 게 어때?”
“엄마! 제 꿈은 오직 하나예요. 경찰이 되는 것!”
“나는 솔직히 네가 위험한 일은 안 했으면 좋겠어.”
“위험하긴 하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고요.”

정의 씨 꿈이 확고하다는 걸 안 모친은 더 이상 그의 꿈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 정의 씨는 중학교 때부터 차근차근 경찰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 왔다. 체육관에 다니며 체력을 길렀고 범죄심리학이나 법학 교양서를 읽었으며, 리더십을 기르기 위해 동아리 활동도 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에 열심이었고, 군대에 다녀온 뒤에는 경찰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기 위한 준비를 구체적으로 했다.

하지만 정의 씨는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접어야 했다. 경찰청과 해양경찰청이 제시한 신체검사 기준 때문이었다. 정의 씨는 어렸을 때 사고로 왼손 약지를 잃었다. 그런데 경찰청과 해양경찰청의 신체검사 기준 중에 ‘사지가 완전한 자’라는 항목이 있었다. 정의 씨는 왼손 약지 하나가 없었지만 일상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컴퓨터를 다루거나 운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경찰청과 해양경찰청에 업무적격성에 대한 구체적 판단 없이 ‘사지가 완전한 자’라는 기준으로 응시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것은 아닌지 질문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불가였다. 

경찰 업무의 특성상 범인을 제압과 집회 관리 등 완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총기나 경찰장구, 차량과 같이 민감한 장비들을 사용해야 해 신체검사 기준에 사지의 완정성이 포함되는 게 정당하다고 했다. 해양경찰청도 마찬가지였다. 해양경찰은 해상에서 해난구조, 불법선박에 대한 범죄단속을 하는데, 이때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손가락 하나가 없으면 파지력과 악력 부족으로 업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결국 정의 씨는 과도한 신체검사 기준에 의해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경찰이라는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인권위는 경찰청과 해양경찰청이 ‘사지가 완전한 자’라는 과도한 신체기준으로 경찰공무원 채용 응시를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하였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이 고유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신체적 기준과 체력을 갖춰야 하는 게 맞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약지는 총기나 장구 사용에 관련성이 적다. 현행 병역법에서도 엄지나 집게손가락, 또는 손가락 2개 이상이 없는 경우가 아니면 병역 면제 사유가 되지 않는다. 또한 손가락이 완전한 사람일지라도 파지력과 악력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경찰을 채용할 때 공고 단계에서는 직무와 관련된 최소한의 시력과 청력 등의 기준만 제시하고 있다. 신체와 체력 조건이 직무에 적합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직무적합성 심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측정한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채용공고 단계에서 신체조건을 ‘사지의 완정성’이라고 규정하여, 외형적인 신체결손이나 변형이 경찰 직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단정한다. 

미미한 신체결손이나 변형은 반드시 신체 기능으로 이어지지 않고, 개인의 훈련과 노력에 따라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인권위는 경찰청과 해양경찰청이 외형적 신체기준을 응시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신체의 작은 결손이나 변형을 가진 사람들의 응시 기회 자체를 원천 차단한 것이며, 이는 응시자들의 평등권을 침해한 차별이라고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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