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시 태동기인 1920~30년대에는 손으로 꼽을 수 있었던 시인의 숫자가 이제는 몇 만 명으로 늘었고 시 전문 월간, 계간잡지만도 수 백 종을 헤아리게 되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춘문예 제도가 존속하고 있어 해마다 이맘 때면 시인, 작가 지망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시낭송 열기 또한 뜨거워서 크고 작은 낭송대회로 수많은 시낭송가들이 배출되어 시를 전파하기에 애쓰고 있다. 각 신문에서는 거의 한결같이 시 한편과 간략한 해설을 곁들인 박스기사를 연재하고 전철역 승강장 스크린 도어에는 숱한 유·무명 시인들과 시민 응모작품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사진>. 많은 경우 자비출판이라지만 하루도 끊이지 않고 시집이 발간되는 나라, 대한민국의 시 열기는 실로 대단해 보인다.

이런 외형적 풍요로움 속에서 우리 시가 처한 어려움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듯하다.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하지만 원고료를 받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몇몇 지명도 높은 시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발간된 시집 대부분이 증정본으로 소화되고 있다. 교과서에 많은 시작품이 실리고 있지만 시의 즐거움을 누리기보다는 입시용으로 분석, 해부의 대상이 된다.

일상의 곤궁함에 지친 대중들에게 점점 난해해지면서 개별 시인들의 독특한 의식과 내면 표출에 할애되는 시작품을 꼼꼼하게 이해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출퇴근 길에 마주치는 지하철 시들은 한결같이 유사한 형식에 비슷비슷한 주제를 노래한 감성, 서정 지향에 치우쳐 자칫 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좁은 울타리에 가두어 놓기 쉽다.

이렇듯 풍요와 빈곤의 두 극점을 달리는 우리 시가 힘들고 지친 사람들 곁에서 위안과 힘을 주고 언어 예술 본연의 미학과 완성도를 더 높이 끌어올려야할 이중의 역할을 떠맡았다. 그 해법을 위한 고민과 조탁은 결국 생산자인 시인들의 몫이다. 올해 현대시 110주년을 보내며 우리 시의 도약과 더 적극적인 대중친화를 응원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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