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억수 시인

2018년이 저물어 간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한 장 남아있는 달력을 바라보니 아쉬움이 가득하다. 생각이 많아진다. 창밖을 보니 아름답게 꽃 피웠던 나무들도 빈 가지만 남았다. 한여름 더위에 등을 내어 주었던 크고 웅장한 느티나무도 잎 하나 남겨두지 않고 모두 벗어 버렸다. 헤아릴 수 없이 떨어져 나간 나뭇잎처럼 시간에 떼밀려 정신없이 보낸 날들의 아쉬움과 앞날의 희망이 교차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긍정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해보지만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다. 겨울나무의 빈 가지에 매달리는 찬바람이 옷깃만 여미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여미게 한다. 생각의 일면들을 되짚어 찬바람의 매를 맞는 반성의 시간을 성숙시켜본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비워야 한다는 말은 잘하면서도 정작 비우려고 노력은 하지 않았다. 남보다 더 많이 돈을 모으고 싶었고 다른 집 자식보다 우리 자식이 모든 일에 더 잘하길 바랐다.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다못해 나의 아내가 현모양처로 아름다우며 살림을 잘한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남을 돕는 일에는 인색했으며 내 그릇 채우는 일에 급급했다. 참으로 욕심스럽게 채우며 살았다. 매 순간 자연은 비움과 채움의 순환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자연의 이치를 보지 못하고 채움에 집착했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살아간다. 집착과 욕심에 사로잡혀 혼자만의 생각에 괴로워한다. 나만 손해 보는 것 같고 나만 소외되는 것 같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내 인생의 초겨울에 즈음해 집착과 욕심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빈 가지로 서 있는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비우는 연습을 해본다. 휴대폰에 많은 연락처가 저장돼 있다. 어떤 것을 삭제해야 하나 망설이다 다시 덮는다. 책장을 보니 오래된 책들이 꽉 차있다. 어떤 책들을 버려야 하나 아무리 둘러봐도 모두 애착이 가는 책들이다. 옷장을 열어보니 일 년이 다 가도록 입지 않고 걸어 둔 옷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 몰라 아내에게 맡기기로 하고 옷장을 닫는다. 비우고 버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러고 보면 채우는 일은 정말 쉬웠다.

겨울나무처럼 마음을 비우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빈 가지의 겨울나무를 보면서 쓸쓸한 느낌을 받는 사람과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기의 뜻대로 시간을 보낸 사람은 겨울나무를 보면서 희망을 느낄 것이다. 아쉬움으로 한 해를 보낸 사람은 쓸쓸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매년 한 해의 끝자락에서 지나온 삶에 만족하고 앞으로의 삶에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이 됐으면 한다. 그러나 해마다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감정은 나의 삶에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비워야 정체돼 부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나는 지금껏 비우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의 내부는 조금의 여유도 없이 꽉 들어찬 채움으로 인해 부패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썩은 냄새가 나는 나를 인식할 것이다. 그동안 나만 모르고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겨울나무처럼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찬란한 봄을 태동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도 당당하게 자신을 가꾸어 가는 겨울나무를 본다. 남은 인생 마음 깊숙이 자리한 욕심을 떨치고 겨울나무를 닮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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