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우리 사회는 점점 '조급모드'로 나아가고 있는 듯 하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의 경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더러는 온 생애를 투여하여 숙성시키며 나름대로 농익은 수준의 기량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시간의 압박과 위력에 쫓기는지 모두들 성급하게 결과물을 보여주기에 바쁘다. 숙려의 과정이 단축된 채 나의 존재와 작품을 한시 바삐 알리고 싶은 조바심인지 풍요속의 빈곤은 가중된다.

이런 분위기가 깊어질수록 한 길에 자신의 온 생애를 건 장인(匠人), 외곬 집념으로 일가견을 이뤘으나 명성과 보답에 초연한 분들이 존경스럽다.

한유성(1908~1994년) 선생. 중요무형문화제 제49호 송파산대놀이 기예능보유자로 자칫 멸실되어 명맥이 끊어질 수 있었던 소중한 민족문화를 지켜낸 분이다. 여덟 살때부터 마당판을 쫓아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운 탈춤이 그 후 80년 가까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이 연희(演戱)에 헌신하게 했다.

상업으로 생계를 꾸렸다지만 관심과 열정은 송파산대놀이에 집중되었다. 1963년 제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내각수반상 이후 잇따른 수상과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은 것은 그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일단이었다. 각종 대회 참가와 공연, 여러 대학 탈춤반 지도, 예술장르 융합의 선각자로 1982년 정월대보름 송파답교놀이를 문인들과 함께 공연하였고, 서울올림픽 기간 중 민속공연 초청참가, 수차례 해외공연 등 송파산대놀이가 전통을 이으며 전승되기까지 한유성 선생의 헌신은 종횡무진, 작은 거인이 이룬 땀의 기록이었다.

서울 송파구에서 '한유성 길'을 조성하고 기념비와 흉상<사진>을 건립한 것은 국가가 보인 관심과 경의의 일환이었고 따님 한창옥 시인(도서출판 포엠포엠 대표)이 '한유성 문학상'을 제정, 시상하면서 장르를 초월한 선생의 예술혼을 기리고 있다.

점차 실익과 조급한 공명심, 자기과시에 탐닉하는 이즈음 세태에서 평생의 삶을 투여해 자신의 신념과 재능을 구체화한 이런 전문가들의 업적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이 그래서 필요하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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