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세상의 변화는 작은 데서 온다. 전 세계 개인용 컴퓨터를 바꾸었다는 빌 게이츠도 오늘날 자신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시골의 작은 도서관이라고 했다.

그제 나는 즐거운 소풍을 다녀온 듯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다. 지역에 작은 공간 하나 만들어 보자, 제대로 만들어 보자고, 쉰 명 남짓한 어른들이 꾸린 토론회가 안겨준 행복감이었다.

이름 하여 '옥천도서관 리모델링과 청소년 복합문화공간 조성을 위한 주민토론회'. 이 행사는 옥천행복교육네트워크라는 민간단체가 세 달 전부터 준비한 것이다. '지역 복합문화공간 조성'이라는 김병우 교육감의 공약 한 줄을 부여잡고.

물론 나름의 지역 이기주의적 동기가 없지는 않았다. 가용재원이 많지 않은 교육청 살림을 짐작하여 다른 시군보다 우선해서 사업을 옥천으로 당겨오고, 확정짓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 또 어떠랴. 과정이 좋음에랴. 도서관의 실태를 조사하고 티 에프 팀을 만들고 청소년 온라인 여론조사를 벌이고 선진지를 견학하고 발표 자료를 준비했다. 그 과정 속에 지역의 긍정 에너지가 응집됐다.

이해관계가 있는 현장이 아니라면, 미리 조직하거나 동원하지 않는 한 토론회가 사람들로 채워지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그럼에도 옥천 교육지원청 대회의실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다.

토론회는 시종 진지하고 풍부해서 눈이 크게 떠졌다. 충북교육감과 주민대표 간담회가 사전에 이루어졌고 광주 청소년 삶 디자인센터 소장의 초청강연회도 있었다. '지역이 바라는 옥천도서관의 모습', '청소년이 꿈꾸는 청소년 공간', '옥천도서관 리모델링 계획'을 주민, 청소년, 도교육청 담당자가 각각 발제한 데 이어 질의응답 및 자유토론이 펼쳐졌다.

어른들과 청소년이 '서로 다르게, 또 같이' 희망하는 옥천 도서관의 다양한 모습을 들을 수 있었다. 다양한 새 책이 많은 도서관, 머물 수 있고 쉴 수 있는 도서관, 다양한 활동을 가능케 하는 도서관, 프로그램 및 공간 구성에 청소년 의견이 반영되는 도서관, 청소년이 자치를 배울 수 있는 도서관, 학습과 체험이 어우러지는 도서관, 사람책과 인문학 수업 등 소통할 수 있는 도서관, 마을 교사와 연결고리가 되는 공간이 있는 도서관 등.

리모델링을 통해 토론회에서 나온 공간의 성격이나 기능, 활동을 다 담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한 '교복 입은 주민'과 '어른 주민'의 뜻으로 옥천에도 뜻깊은 공간 하나가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 참여와 활동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하는 청소년 문화 공간이 기대되는 이유다. 토론회는 그런 공간을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주민의 주체적이고 자발적 에너지가 뿜어 나오는 장이었다.

옥천에 청소년들과 주민을 위한 새 꿈둥지가 마련되면, 만드는 과정에 함께 한 사람들이 텅 빈 공간조차 의미 있게, 아름답게 가득 채울 것이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작은 모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그들만이 사회 변화를 이끌어왔다."(마거릿 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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