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대전사무소] 이야기로 풀어보는 인권위 결정례

종례가 끝났는데 한열정은 집에 갈 생각도 않고 무언가를 유심히 읽고 있었다. 어찌나 집중해서 읽던지 그 기세가 종이를 뚫을 정도였다.

“한열정!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냐?”

앞자리에 앉은 송우정이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한열정은 송우정을 향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재학생 대상 기숙사생 선발 안내’ 가정통신문이었다. 

“아, 이거? 내년에 기숙사 들어가려고?”

“응. 올해 너무 놀아서 내가 내신이 별로잖냐. 그래서 내년에는 기숙사 생활하면서 맘 잡고 공부 좀 해 보고싶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의지박약이라 집에서는 공부가 잘 안 되거든.”

“오, 한열정! 열정을 다해 공부하시겠다? 그러면 신청하면 되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고 있냐?”

송우정이 한열정에게 가정통신문을 돌려주며 말했다. 한열정은 가정통신문을 가방에 넣으며 한숨을 쉬었다.

“선발 기준이 내신이랑 진단평가, 모의고사 성적 등을 반영해서 성적우수자 순으로 선발한다잖아. 그런데 내 성적이 그다지 안 좋아서 안 될 것 같아. 그래도 한 번 신청해 볼까? 말까? 아, 고민 돼!”

한열정의 말에 송우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야! 그 기준은 뭔가 좀 문제가 있지 않냐?”

“뭐가?”

“성적우수자 순으로 선발한다는 거 말야. 왜 성적 좋은 애들한테만 기회를 줘? 공부를 못하면 이 학교 학생 아니냐? 그리고 1학년 때 못 했어도 기숙사 들어가서 열심히 하면 2학년 때 성적이 오를 수 있잖아. 1학년 때 공부 못 했다고 기숙사 들어갈 기회를 주지 않는 건 문제가 있는 거지.”

송우정의 말은 들은 한열정은 기숙사 선발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송우정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1학년 때 내신관리를 하지 않은 자신을 탓했는데 생각해 보니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였다. 집에 돌아온 한열정은 자신의 학교 외에 다른 학교에서도 성적우수자 순으로 기숙사 입소자를 뽑는 학교가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전국의 모든 학교를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여러 학교가 성적우수자에게 기숙사 입소 기회를 주고 있었다. 

인권위는 기숙사 입소자를 선발할 때 현재 시점의 성적으로, 더욱이 다른 요건들을 고려하지 않고 성적순으로 자격을 결정하는 것은 학력이 낮은 학생을 차별하는 행위로 보고 있다. 학교 기숙사의 설치 목적은 통학으로 인해 경제적 혹은 시간적인 것에서 오는 부담을 줄이는 데 있다. 또한 쾌적한 교육환경 등의 편의를 만들어주어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함에 있다. 때문에 성적 우선이 아니라 학생 개인에게 있어서 기숙사가 왜 필요한지, 공부를 하고자 하는 열의는 어떠한지,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적합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기숙사 입소자를 선발하는 것이 옳다. 

한편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 중에서는 입시환경이 변화하고 기숙사비에 대한 부담, 공동생활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의 기호 변화 등으로 기숙사 입소 희망자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성적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것이 사실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성적을 기준으로 했을 때 기숙사 신청에서 탈락자가 생기거나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있으므로 성적순으로 입소자를 선발하는 규정이나 지침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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