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 끌어들인 디스는 소모적, 혐오 부추겨"

▲ [연합뉴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자료사진]
▲ [유튜브 캡처]
▲ [유튜브 캡처]
▲ [유튜브 캡처]
▲ [유튜브 캡처]
▲ [유튜브 캡처]
▲ [유튜브 캡처]
'젠더' 논쟁, 힙합계로…산이·제리케이 등 '디스'전 양상

"혐' 끌어들인 디스는 소모적, 혐오 부추겨"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남녀의 쌍방 폭행인 '이수역 주점 폭행' 사건으로 번진 남혐(남성혐오)과 여혐(여성혐오) 논쟁이 힙합계로 옮겨왔다.

이수역 폭행 사건을 계기로 래퍼 산이가 지난 16일 '페미니스트'란 곡을 기습 공개하자, 또 다른 래퍼인 제리케이와 슬릭이 산이의 가사를 비판했고, 산이가 다시 '6.9㎝'란 곡으로 응수하며 '디스'(Diss)전 양상이 됐다.

시작점은 산이가 "저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 혐오가 불씨가 되어 혐오가 조장되는 상황을 혐오한다"라는 글과 함께 유튜브에 공개한 '페미니스트'였다.

산이는 이 곡에서 '넌 또 OECD 국가 중 대한민국/ 남녀 월급 차이가 어쩌구 저쩌구', '야 그렇게 권릴 원하면 왜 군댄 안가냐/ 왜 데이트 할 땐 돈은 왜 내가내' 등 직설적인 랩을 내뱉어 누리꾼의 갑론을박을 불러왔다. 그는 이 곡에서 '여성가족부', 남성혐오 인터넷 커뮤니티인 '워마드' 등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자 데이즈얼라이브 소속 제리케이가 17일 '노 유 아 낫'(NO YOU ARE NOT)을, 슬릭이 18일 '이퀄리스트'(EQUALIST)를 잇달아 공개해 산이의 가사를 저격했다.

제리케이는 '노 유 아 낫'에서 '맞는 말 딱 한 개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며, '36.7% 임금격차 토막 내/ 그럼 님이 원하는 대로 언제든 돈 반반 내'라고 응수했다. 또 산이가 미국 시민권자로 군 면제자란 점을 꼬집어 '면제자의 군부심'이라고 받아쳤다.

슬릭 또한 '이퀄리스트'에서 '참 뻔뻔해 저게 딱 한남 특유의 근자감'이라며 '한 오백만년 전에 하던 소릴 하네'라고 산이의 랩 가사가 옛날 사고라고 꼬집었다.

'니가 바라는 거/ 여자도 군대 가기 데이트할 때 더치페이 하기/ 여자만 앉을 수 있는 지하철 임산부석 없애기 여성전용 주차장 없애기/ 결혼할 때 돈 반반 내기'라고 산이를 저격하며 자신이 바라는 것은 '강간하지 않기/ 폭행하지 않기'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산이는 다시 '6.9㎝'란 곡에서 제리케이를 언급하며 한층 날 선 랩을 했다. 6.9cm는 일부 남성혐오 사이트에서 남성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제리케이 참 고맙다/ 너 때문에 설명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로 시작하는 이 곡에서 산이는 '속마음은 여자 존중치 않는 파렴치', '기회주의자'라고 제리케이를 비꼬았다.

또 '어찌 그 노래('페미니스트')가 혐오를 부추겨'라며 좀 더 깊게 봤다면 '화자로 등장한 남자의 겉과 속 다른/ 위선과 모순 또 지금껏 억눌린 여성에 관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린 혐오 사회 살아 편 가르고 죽이는 사냥'이라며 '뭐만 해도 남자가 여자를 공격'하고 선동을 끌어들이는 남성 혐오 주의자들은 '여성인권 아냐', '독'이라고 날 선 랩을 했다.

이 같은 '디스' 곡 배틀에 누리꾼은 지지와 비판을 보내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페미니스트' 가사 논란으로 산이는 지난 17일 여성들이 주로 입는 요가복 브랜드 행사 출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디스'는 '디스리스펙트'(Disrespect)의 줄임말로 음악을 통해 사회적인 문제에 견해를 밝히고 풍자 등을 통해 상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힙합 문화의 일종이다.

산이 역시 사회적 논쟁에 견해를 밝힌 것으로 풀이되나, '혐오가 조장되는 상황을 혐오한다'는 취지와 달리 여러 래퍼의 가세로 '젠더'(Gender) 논란이 뜨거워진 모양새다. 일부에선 디스 전이 취할 여러 이슈가 있음에도 이 갈등을 짚었다는 점에서 화제성을 위한 힙합계 욕구도 보인다고 꼬집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혐'(嫌)을 끌어들인 디스는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미 사회적으로 그 해결점을 찾기 쉽지 않아 다른 식의 사고와 관점이 필요한 시점인데, 다시 혐의 관점으로 프레임을 짜서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남성과 여성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mimi@yna.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