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충남본부 취재부장

우리는 모두 어려서부터 정정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학교에서, 부모님에게서, 또 책에서 항상 정정당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배웠다. 누군가 경쟁 상대가 있을 때는 더더욱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겨뤄서 이겨야 한다고 배웠다. 심지어 축구경기를 할 때도 비겁한 반칙을 쓰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룰을 지켜 싸워야 한다고 늘 그렇게 배워왔다. 수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도 부정행위를 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실력대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우리가 늘 말하고 사회로부터 강요받아 온 ‘비겁하지 않고 떳떳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정정당당’은 사실 중국의 병법서인 손자병법에서 유래된 말이다. 무요정정지기(無邀正正之旗) 물격당당지진(勿擊堂堂之陳)을 줄여서 ‘정정당당’이라 하는데 그 뜻은 ‘깃발이 잘 정돈된 군대와는 맞서 싸우지 말고 기세가 당당하게 전열을 갖춘 군대는 공격하지 말라’는 뜻이다.

손자병법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병법서이니 결국 깃발이 잘 정돈되고 기세가 당당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병사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자리에서 꼼수를 쓰지 않고 맡은 바 역할을 떳떳하게 수행할 때 그 군대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자라나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이 사회가 ‘정정당당’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최근 숙명여고에서 벌어진 시험답안 유출 의혹 사건은 대학입시를 위해 정정당당하게 공부하며 경쟁하고 있는 수많은 수험생들에게 허탈감과 함께 배신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학생들에게 ‘정정당당’을 가르쳐야 할 교사가 자신의 자녀만을 위해 우리 교육 전체의 신뢰를 단번에 깨버린 충격적인 일이다.

또 시중은행과 여러 공공기관에서 불거지고 있는 부정취업 및 취업청탁 의혹 역시 취업을 위해 잠 잘 시간까지 쪼개가며 노력했던 응시자들을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어렵게 취업을 준비하는 ‘흙수저’들에게 대한민국은 아무리 노력해도 ‘빽’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헬조선’일 뿐이라는 자괴감을 심어줬다.

또 큰 죄를 짓고도 아프다는 핑계로 감옥이 아닌 병원에 머물며 매일 술을 마시러 다닌 재벌총수, 나랏돈으로 명품을 구입하고 심지어 성인용품까지 산 사립유치원 원장 등 ‘정정당당’하지 못한 이들에 관한 뉴스가 일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는 법원에서 부당하게 재판에 개입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목숨을 건 노동을 강요당했던 일제징용피해자들의 재판마저 어두운 사법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사법농단은 온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불공평해도 법원만큼은 진실의 편이라고 믿었던 소시민들의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일련의 상황들은 모두 가장 ‘정정당당’해야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외면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전쟁터에 나가는 중대장과 소대장은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병사들에게만 규칙을 강요하는 꼴이다.

과연 우리사회가 언제쯤 비겁하지 않고 떳떳하게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정정당당’을 얘기할 수 있게 될 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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