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지난 7~8일 전국 공립미술관의 소장품 보존 관리 담당자 3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마련한 ‘2018 공립미술관 보존분야 활성화 워크숍’(이하 워크숍)이 계기였다. 프로그램 주 내용이 ‘공립미술관 보존지원 사업계획’과 ‘공사립미술관 보존지원 규정 및 정책방안’ 등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워크숍은 현정부의 미술관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보인다.

그간 국내에서 이같은 성격의 워크숍은 행사를 위한 행사로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워크숍은 공립미술관들의 공감과 실제적이고 진지한 논의가 이뤄졌다. 국내 국공립미술관들의 소장품 보존과 관리를 둘러싼 깊은 고민의 반증이리라. 국내의 경우 제한된 수장고 규모에 반해 미술관의 역사와 함께 늘어가는 소장품들의 보존 관리 차원의 문제는 늘상 괄호 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문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결국 초대형 수장고를 청주로 이전 설립하게 된 근거이기도 하다.

최근 비디오 아티스트의 대표자인 백남준(1932~2006) 작품의 보존·수복 문제가 미술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1988년부터 30년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되었던 백남준의 초대형작 ‘다다익선’이 지난 2월 작품의 노후 문제로 가동 중단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어느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백남준 스스로 수명을 8만 시간 정도로 예상했던 ‘다다익선’은 2003년 모니터 전면 교체 등 9차례 수리했지만 결국 가동 중단됐다. 노후화 문제는 ‘다다익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로비 벽면에 설치돼 있는 ‘서울 랩소디’와 서울 소마미술관의 ‘메가트론’ 역시 영상 기동을 하루 3, 4시간으로 단축했다. 2001년부터 우리미술관 로비에서 전시되고 있는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테크놀러지가 가져다주는 가능성에 한껏 고양되었던 한 천재 예술가의 진보적 실험이 시대적 딜레마를 안고 있었음을 예측하지 못했던 탓이다. 예술과 테크놀러지의 결합으로 태어난 예술은 아마도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덧없는 종류의 시간예술이다. 텔레비전과 비디오는 당시 백남준에게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예술적 기획의 핵심에 놓게 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첨단을 대변하던 매체인 텔레비전의 힘은 그로 하여금 어떠한 개념이라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을 맛보게 했다.

이제 텔레비전은 매력적인 힘을 잃었다. 인터넷의 시대로 변화 된지는 오래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안겨주던 오늘의 매체가 내일과 같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짧은 미술관의 역사만큼이나 ‘예술작품’의 생애주기가 폭넓게 논의된 적이 전무한 국내에서 현재의 ‘백남준 작품 노후화 논란’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예술은 사기’라던 백남준의 워딩과 그의 비디오 작업들의 노후된 현재적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재촉하는 것 같다. 이를 계기로 ‘예술’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시대를 대변하는 테크놀러지와 결합된 예술 ‘작품’을 오래 살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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