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태 ETRI 미래전략연구소장

최근 개최된 ‘정보통신(ICT) 산업전망 컨퍼런스’에서 ICT 생산이 2019년부터 크게 둔화되고, 2020년에는 역성장을 시작해 2021년에는 하락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우리나라 혁신성장의 핵심이 된 ICT는 1996년 15.5%의 성장으로 GDP성장률 7.5%의 2배를 초과하는 성장을 기록하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후의 경제회복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러한 성장은 2000년 중반 이후 지속돼 2017년 ICT 산업이 GDP의 10%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성장위주의 연구개발 정책, 중국의 급성장, 휴대폰,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편중된 성장구조가 ICT 산업구조의 왜곡은 물론 경제성장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개발과 경제발전 관계에 있어 중요한 지표로 연구개발 총투자규모의 GDP 비중이 자주 언급된다.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연구개발 투자의 GDP 비중은 ICT가 경제발전의 핵심 축이었던 90년대 후반 2%대에서 2007년 3%대에 이르며 미국을 추월했다. ICT는 CDMA에 이어 와이브로, DMB, 디지털TV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활발한 연구개발 투자와 성장이 동행됐다. 그러나 4%가 넘어선 2012년 이후 과거와 같은 대형 성과물이 창출되지 않았다. ICT 연구개발 투자도 2016년 기준으로 기초연구 12.2%, 응용연구 20.8%, 개발연구 67.0%로 개발연구에 치중하고 있다.

ICT가 후발주자로서 기술격차를 급속히 줄여나가며 얻었던 성장잠재력이 소모되는 가운데 경쟁력도 약화되거나 정체 단계에 이르고 있어 새로운 혁신성장 동력 발굴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실정이다. 그동안 추구했던 양적성장을 넘어 미래를 위한 질적성장을 위해선 잠재성장의 핵심요소인 원천기술, 특히 미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원천기술 확보가 중요하다. 원천기술이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필수불가결한 독창적 기술로서 지속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다양한 기술 분야에 응용이 가능한 기술을 뜻한다. 기초과학과의 연계성이 클수록, 다른 기술개발에 인용이 많이 될수록 원천기술에 가깝다.

미국은 2000년대 초 국가경쟁력 하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경쟁력강화법을 2007년 8월에 제정했다. 기존의 연구에서 탈피해 국가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과학 자체의 진보를 이룰 수 있는 변혁적 연구를 정부 연구개발을 통해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EU도 과학기술·연구개발은 회원국 단독으로 충분한 지원이 어렵다는 인식 하에 공통 연구개발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프레임워크 프로그램, 호라이즌 2020 등을 통해 산업리더십 창출 및 경쟁력 제고를 중점 분야의 하나로 설정하고 ICT를 중심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기술선진국들은 원천연구를 통해 기술격차를 더욱 확대하고, 미래기술을 선점함으로써 그 이득을 경제 전반으로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ICT 주력 품목들이 성장 한계에 직면하고, ICT 전영역에서 중국의 도약이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제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를 통한 원천기술개발연구가 미흡할 경우 미래시장 주도권 상실은 자명하다.

미래의 불확실성이나 기술의 변혁적 발전과 더불어 적용범위가 넓고 파괴적 영향력을 가지는 원천기술의 특성상 미래원천연구 추진방식은 확정형 대형사업 기획보다는 분야에 대한 정의와 점진적 구성형 기획이 바람직하다. 기술을 특정하지 않고 미래 ICT가 가져올 변화 및 요구를 중심으로 원천 분야를 정의하고, 선도적 개발을 통한 검증, 중기적 변화 반영 및 장기적 결과물의 지속적 정제를 보장할 수 있는 유연한 적응형 기획이 필요하다.

미래의 기술발전은 규모나 범위, 그리고 복잡도에 있어 지금까지 없었던 발전을 이룰 것으로 예측되므로 기초와 응용을 연계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조직적 접근주체가 역할을 해야한다. 기술 변동성에 취약한 학계, 고위험 도전에 소극적인 산업계를 포괄해 미래원천기술을 기획하고, 롤링플랜을 수립하고 조율하는 국가연구기관의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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