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서 사라짐에 소리 없고/ 나무닢 때마다 떨어짐에 소리 없고/ 생각은 사람의 깊은 흔적 소리 없고/ 인간사 바뀌며 사라짐에 소리 없다/ 아, 이 세상 사는 자, 죽는 자, 그 풀밭/ 사람가고 잎지고 갈림에 소리 없다. - 조병화, '낙엽의 뜻'

서울 망우동 공원묘지 가수 차중락의 묘비에 새겨진 내용이다. 1968년 11월 10일 세상을 떠났으니 내일이면 꼭 50주기가 된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해 왔다가 체포되었고 10월에는 '국민교육헌장'을 공표하는 등 유신선포를 몇 년 앞둔 군사정권의 긴장국면이 점차 가중될 무렵 차중락이 부른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은 국민들의 정서를 어루만지고 원초적인 감성에 젖게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었다.

'국민교육헌장'이 입학시험에 나온다 하여 각급학교 학생들이 통째로 암기하는 열풍이 불고 헌장문구 조목조목 '담긴 뜻'을 학교와 학원에서 중점지도하던 삭막한 시절 이 노래는 학생들은 물론 기성세대들의 심성까지 함께 아우르며 애상에 찬 정서를 널리 전파하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개사한 노래였지만 유연하고 쓸쓸하면서도 감미로운 멜로디와 가사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도 공감을 준다. 시대에 뒤떨어진 감상일변도 나약한 심성을 노래했다고 하기에는 그 호소력과 분위기는 이미 시공을 초월하여 가슴으로 스며든다. 그 누군들 낙엽의 운명에서 비껴날 수 있을까.

음악성은 물론 준수한 용모와 학력, 성품 등 나무랄 데 없는 젊은 가수 차중락이 뇌막염으로 26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 노래와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숨 쉬고 있다. 그의 이종형 김수영 시인 역시 올해 세상을 떠난 지 50년, 사촌간인 두 예술인의 자취를 생각해 본다.

중학생 시절 라디오나 LP판으로 듣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내일 차중락 가수 50주기 기일을 앞두고 유튜브에서 다시 귀 기울여 듣는다. 음악, 삶, 시간, 사랑과 죽음 그리고 가을 같은 일상적이지만 절실한 화두가 맑고 애잔한 선율을 타고 한꺼번에 다가오는 듯 하다.<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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