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억수 시인

청남대 가는 길이 가을 햇살에 분주하다. 대청호를 따라 굽이굽이 조성된 길에 도열한 가로수는 저마다의 색깔로 바람을 유혹한다. 노랗게 익은 은행나무 사이로 대청호의 물빛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대청호 둔치에 나부끼는 억새와 갈대의 손짓을 따라가다 보면 목백합 가로수 터널에 들어선다. 마치 블랙홀을 지나 먼 우주로 여행하는 아스라함에 가슴이 벅차다. 신비한 황홀경에 가로수 터널을 빠져나오면 그동안 느끼지 못한 가을 햇살이 상록수와 단풍나무에 어우러져 앉아 있다. 정문 매표소 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해본다.

청남대는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시 착공해 6개월 만에 완공한 곳이다. 당시 일반인들의 출입이 전면 금지돼 궁금증은 증폭됐다. 최고 권력자인 지상의 별이 머무는 곳이기에 무수한 소문이 난무했다. 제2의 청와대로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해 세간에 떠돌았다. ‘대통령의 집무실은 물속에 있다’, ‘유사시를 대비해 건물의 천정과 외벽은 수 미터의 철옹성으로 박격포를 쏘아도 끄떡없다’, ‘호화 집기와 수도꼭지조차도 금으로 되었다’는 등 확인할 수 없는 유언비어가 무성했다. 아득하고 신비한 20여년의 세월이 참여정부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베일을 벗었다. 수많은 소문도 충청북도로 이양돼 국민에게 개방되자 꼬리를 감췄다.

청남대는 지난 20년간 다섯 분의 대통령이 휴식과 함께 국정을 구상하던 곳이다. 그동안 머물다 간 다섯 분의 공과를 반면교사로 삼는 역사의 현장이다. 그들은 자신이 걸어온 인고의 세월을 찬란한 영광에 자만했는지 모른다. 지상의 별이 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그들은 별이 된 후에는 자신의 처신에 심혈을 기울이지 못했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에 머리를 조아리고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이룬 지상 최고의 별빛이 바라지 않도록 자신에게 더욱더 냉철했다면 우리의 삶도 좀 더 질박했을 것이다.

가을을 안은 반송의 영접을 받으며 본관으로 향했다. 헬기장 잔디밭에는 '단풍의 화려함, 국향의 설레임'이라는 주제로 국화 축제가 이달 11일까지 펼쳐진다. 축제 기간 휴관 없이 개방된다. 월요일은 사전예약 없이 승용차량을 이용해 입장이 가능하다. 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야간개장을 한다. 헬기장을 가득 메운 각종 국화 작품 속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조형물이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 기세다. 다양한 체험 행사와 다채로운 문화예술 공연도 펼치고 있다.

대통령의 숨결이 스며있는 본관을 둘러보면서 그동안 소문이 얼마나 허황한 유언비어였는지 실감이 났다. 실체도 없이 떠돌던 소문과 궁금증은 소박한 건물과 검소한 집기를 보는 순간 사라졌다.

본관을 둘러보고 청와대를 축소해 놓은 대통령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는 메타세콰이어 숲이 장관이다. 양어장 주변에 붉게 물든 단풍은 가을 하늘을 데려와 더 곱게 치장한다. 노곤한 하루가 음악분수대에 무지개로 서린다. 대통령 기념관 벽면에 걸린 대형 화폭 속의 역대 대통령의 모습에 겹치는 청남대의 가을이 찬란하다 못해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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