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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권하는 사회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8년 11월 09일 금요일 제22면     승인시간 : 2018년 11월 08일 15시 59분
양윤석 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최근 한 요리연구가가 불을 지핀, '설탕과잉의 늪에 빠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모유 대신 분유를 먹었던 2030세대는 단맛에 길들여졌고, 먹방을 통해 설탕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경고일 뿐 선진국 식단에 비하면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크게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한국 사회가 권하는 '호르몬'이다. TV를 켜면 여성에 좋다는 콩, 칡, 석류, 백수오, 인삼에서 추출한 식물성 에스트로겐(phytoestrogen)이 우리 눈을 사로잡는다.

1만2000년 전 농업혁명으로 인해 인간의 식단은 엄청난 변화를 거쳤다. 곡물이 식단의 주가 된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우리의 식단은 가공식품이 점령하고 있다. 햄버거, 통조림 음식, 인스턴트식품이 집밥을 대신한다. 퇴근 후 동료들과 핫도그, 소시지, 피자를 먹으며 맥주를 마신다. 이런 가공 식품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콩을 주재료로 하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며, 이는 맥주와 화장품에도 들어 있다.

당이 인슐린과 균형을 이룰 때 인간에게 에너지원이 되듯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이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이라는 배란호르몬과 균형을 이룰 때 여성 건강은 최정점에 있게 된다. 하지만 35세 이후 배란이 잘 되지 않으면서 프로게스테론이 떨어지면 가공 식단에 들어있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호르몬 균형을 깨트린다. 특히 야근과 같은 스트레스로 부신피로가 유발되면 프로게스테론이 현저히 감소하고, 여성호르몬 과잉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생리불순, 비만, 월경 전 증후군, 만성피로, 비만과 생리통이 그것이다.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사실 환경호르몬(xenoestrogen), 내분비 교란물질로 분류되고 있다. 환경호르몬, 즉 제노에스트로겐은 플라스틱, 세제 등과 GMO식품, 살충제, 향수, 화장품, 섬유유연제 등에 존재하는 합성호르몬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와서 진짜 여성호르몬(estradiol)이 작용하는 수용체에 달라붙어 여성호르몬을 지나치게 자극한다. 그 결과 불임, 자궁내막증, 기형아출산, 심지어는 암까지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콩으로 대표되는 식물성 에스트로겐도 남용되면 환경호르몬과 같이 진짜 여성호르몬을 교란시키는데, 이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는 것이다. 콩과 같은 강력한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쥐에게 과량 투여하면 성 정체성에 이상을 일으키고, 공격적 성격으로 돌변하며, 생리불순과 짝짓기에 흥미를 잃는다는 연구도 있다. 1980년대 말 이후 우리의 식단은 가공식품과 콩으로 대표되는 저렴한 단백질로 급격히 바뀌었으며, TV에서는 여성에게 좋다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여성들은 피곤할 때 콩을 듬뿍 먹고, 석류, 칡즙, 인삼 정도는 마셔야 된다고 생각할 정도다. 이 정도면 우리의 몸은 에스트로겐 과다증(estrogen dominance syndrome)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80년대 여성의 초경나이는 16세 정도였지만 최근 11세로 빨라졌고, 간혹 8세 때 초경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40대 미만 미혼인구 중 절반은 성경험이 없다고 한다. 성호르몬 과다증의 대표 질환인 다낭성 난소증후군은 10명중 1명에서 발병하고 있으며, 불임을 일으키는 자궁내막증은 4년간 31.5%의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여성호르몬 의존성 질환인 자궁근종과 선근증은 여성 3명중 1명이 고생하고 있다. 이 모두가 여성호르몬 과잉일 때 생기는 질병인데, 플라스틱 및 세제와 같은 환경호르몬 탓만 할 수 없다. 약 100년간의 연구와 경험에서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에서 내분비 파괴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화합물에 노출되면 일부 집단, 특히 유아, 사춘기에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이 인정되고 있다. 어쩌면 플라스틱 및 세제와 같은 환경호르몬보다는 우리식단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의 남용이 또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한다.

식물성 에스토로겐도 설탕과 마찬가지로 부족할 때 우리 몸에 좋은 것이다. 설탕도 과잉이 되면 독이 되듯, 식물성 에스트로겐도 과하면 환경호르몬에 못지않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할 때다. 단순히 식물성이라는 이름이, 여성에게 좋다는 광고를 등에 업고 우리의 경각심을 무너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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