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섭 대전본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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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빚 59조원. 갚아야 할 돈과 함께 마음의 짐도 복리로 불어나고 있다. 조금 더 나은 삶이란 욕구에는 비용이 따른다. 청년들이 빚을 지는 것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발버둥치다 그렇게 된다.

어깨에 짊어진 모든 빚의 무게는 향후 그보다 나은 소득을 위한 기회비용으로서 시작된다. 대개의 경우는 학자금이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없는 청년이 대학이라도 나오지 않으면 비빌 언덕이 없다는 점에서 대학은 여전히 계층 이동을 위한 필수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직장에 따라 학자금이 회사에서 지원되거나 무이자 대출이 되는 청년들도 물론 있다. 반대로 말하면 부모 배경이 약할수록 비싼 이자로 학자금을 빌려야 하고 결국 학자금 대출에서부터 빚이 불어나기 시작한다.

최근 시중은행은 정부의 가이드라인대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하 DSR) 관리지표를 도입했다. 빚이 있는 사람은 ‘얻는 소득만큼 열심히’ 빚을 다 털어낸 다음에야 다시 돈을 빌릴 수 있게 됐다.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어떻게 보면 매우 상식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금융기관들은 이 관리지표를 매우 경직된 기준인 ‘숫자’로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빚으로 시작한 청년들이 ‘다시 빚을 지기위한 기준’에 충족되기 위해서 살아가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집은 꿈도 못꾼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 따위는 없어진지 오래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른바 '신용 소외층'은 기회조차 갖기 어려워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러한 청년 빚에 대해서 우리사회는 그다지 너그럽지 못하다. 능력이 없으면 애초에 빚을 지지 말았어야 한다거나 그럴거면 비싼 대학을 왜 갔느냐고 따지고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작도 전에 먼저 신용을 보이라고 한다. 신용이 없으니 시작하려는 노력조차 안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순서가 바뀌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청년 빚에 대해서는 다른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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