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과학포럼] 최현화 ETRI 클라우드연구그룹 선임연구원

2018년 노벨상 수상을 포함해 지금껏 23명의 노벨 과학상을 배출한 일본을 바라보며 매년 이맘때 노벨상 계절이 되면 온 나라가 과학기술의 중요성으로 들썩인다. 여기저기서 기술 수준의 원동력은 연구개발(R&D)의 꾸준한 투자이며 실패가 용인되는 연구 환경을 보장해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다가도 금세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공계 이탈 현상과 고급 두뇌 인력들의 해외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며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에서도 매년 투자비용 대비 성과 측정이라는 결과 중심주의 평가가 수행됨에 따라 단기성 혹은 가시성이 높은 응용연구에 몰입돼 있는 게 현실이다.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꾸준히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해온 우리나라는 왜 오늘날 이와 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걸까? 우리나라 연구개발 정책은 과학기술기본계획이 대통령 임기와 같은 주기로 5년마다 정책변화를 맞는다. 이를 실행하는 담당기관 역시 조금씩 달라져왔다. 투자는 계속했으나 과학기술 연구개발 정책의 연속성 부재로 장기적인 기초 연구개발보다는 현재 기술 트렌드를 바탕으로 투자가 진행돼 온 셈이다. 단적인 예로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 출현에 따라 인공지능(AI) 기술이 주목을 끌면서 인공지능 기술의 접목 없이는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인공지능 기술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이런 식의 연구개발은 우리나라 연구원들을 빠른 기술 추격자(Fast Follower)로 만들 수 있겠지만 선도자(First Mover)가 될 수 있는 기회는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혼조 다스쿠 교수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 깊다. “돌멩이를 주워 갈고 닦았더니 다이아몬드가 됐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일의 진행은 느리지만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려 애쓴다.” 과학에도 기초과학이 있듯이 ICT에도 원천기술이라 할 수 있는 기반SW 기술이 있다. 기반SW기술도 기초과학처럼 단기간 내 기술 습득이 어려워 꾸준한 연구를 통해서만 성과가 나오고, 연구 성과의 산업적 파급력이 크다는 측면에서 기초과학과 비슷하다.

필자는 ETRI SW기반기술연구본부 클라우드연구그룹에서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기술을 연구 중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2006년 구글의 크리스토프 비시글리아가 CEO 에릭 슈미츠에게 처음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수도와 전기처럼 필요할 때마다 네트워크를 통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스토리지 등 컴퓨팅 자원을 서비스 형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컴퓨팅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필자는 아마존의 EC2, 구글의 GCE, 마이크로소프트의 Azure와 같은 이종의 클라우드를 단일화된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클라우드 서비스의 품질 보장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브로커리지 기술 개발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는 자체 보유하고 있는(On-premise) 스토리지 장치와 클라우드 스토리지를 하나의 저장 공간으로 제공하는 통합 스토리지를 개발 중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 클라우드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일각에선 클라우드 기술의 연구개발에 대한 추가 투자가 더 필요하냐는 회의적인 이야기가 들린다. 개발자로서 이와 같은 소식은 자칫 클라우드 기술 개발의 중단을 초래할까 우려된다. 필자는 현재의 클라우드 기술에 머물거나 다른 유행하는 기술로 방향을 전환하기 보다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연구개발 수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반 SW기술은 꾸준한 연구만이 승부를 낼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묵묵히 개발한 기술만이 향후 세상이 꼭 필요로 하는 서비스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필자에게 기반SW 기술의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필요한 단 하나를 뽑으라면 끈질기게 한 분야 연구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라 말하고 싶다. 그런 환경에서 최고의 연구자가 되고 싶은 게 연구자로서의 소망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