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부모갈등’ 학업중단 위기 대전 고교생
자연휴양림으로 ‘나를 찾아가는 힐링열차’
숲 산책·짚라인 체험 등 통해 스트레스 해소
함께 고민 나누고 진로탐색… 치유의 시간 가져

“언니 파이팅! 언니 파이팅!”, “아이 참, 좀 더 흔들어봐요.”, “어디 보자, 얼마나 나왔어? 와 300번이래 대박이다!” 열차 안이 시끌벅적한 응원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정지윤(2학년·가명) 양이 자신이 속한 조가 만보계 흔들기 게임에서 승리하자 소리높여 환호했다. 멘토가 만보계를 흔드느라 아픈 팔을 문지르자 옆에서 안마를 해주며 “언니 완전 최고! 쿠폰 벌써 다 모았어요! 우리 이제 저녁 다 먹었다”고 웃음지었다. 대전지역 고등학교 여학생 38명은 지난 25~26일 전북 군산 방장산자연휴양림으로 ‘나를 찾아가는 힐링열차’ 여행을 떠났다. ‘힐링열차’를 탄 학생들은 학폭 가·피해, 부모갈등, 부적응 등 학업중단 위기를 겪는 학생들로 1박 2일 동안 숲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며 자아 찾기와 진로·직업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 대전지역 고등학교 여학생 38명은 지난 25~26일 전북 군산 방장산자연휴양림으로 ‘나를 찾아가는 힐링열차’ 여행을 떠났다. 사진은 학생들의 프로그램 참여 모습. 사진=이나래 기자
◆게임으로 스킨십하며 친구들과 소통

“여러분 열차 안에서는 서로 친구들과 마주 보며 앉아야 해요.”

“선생님, 꼭 그렇게 앉아야 해요? 그냥 편하게 각자 따로 앉으면 안되는 거에요?”

힐링열차에 탑승한 학생들은 조별로 모여 마주보며 앉으라는 말에 볼멘소리를 냈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학생들이 빨리 친해질 수 있도록 서로 다른 학교 학생들과 조를 만드니 같은 조 친구들과 눈도 못 마주치며 어색해하는 모습이었다. 한 학생은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첫 만남이 어색한 나머지 아침에 먹었던 김밥에 체할 뻔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쥐죽은 듯 조용했던 열차 안은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고 다양한 게임이 진행되자 서서히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처음엔 손을 내미는 것도 부끄러워하고 주춤했던 학생들은 승부욕이 발동한 듯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정답을 외치는 등 퀴즈에 몰두했다. 땀을 흘리며 게임을 마치고 나니 몇몇 학생들은 SNS 아이디를 공유하기도 하고 셀카를 찍는 등 언제 어색했냐는 듯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

이예슬(2학년·가명) 양은 “솔직히 아무 생각 없이 선생님들이 참여하라고 해서 왔는데 학교와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즐겁다”며 “프로그램 이름처럼 나에 대한 주제를 찾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 대전지역 고등학교 여학생 38명은 지난 25~26일 전북 군산 방장산자연휴양림으로 ‘나를 찾아가는 힐링열차’ 여행을 떠났다. 사진은 학생들의 프로그램 참여 모습. 사진=이나래 기자
◆숲 산책·에코 어드벤처로 힐링

휴양림에 도착한 후 학생들은 방장산 인근을 걷는 동안 숲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맑은 공기를 마셨다. 숲 해설가가 건넨 산초 이파리 냄새를 맡고 설명을 들으며 학생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도토리를 주워 사진도 찍고 징검다리를 건널 땐 서로의 손을 잡아 도와주며 산책을 이어갔다.

짚라인 체험장에 도착 후 강사의 지시에 따라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한 명씩 줄을 서 짚라인을 탔다.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흔들다리 위에서 장난을 치는 등 환한 얼굴로 활동을 즐겼다. 제일 첫 타자로 집라인을 탄 장한솔(1학년·가명) 양은 “그냥 짚라인만 타고 끝인 줄 알았는데 흔들다리도 건너고 통나무 속도 통과하느라 땀이 비 오듯 와서 힘들다”며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싶지만, 공기도 맑고 신선해 여기 온 건 후회되지 않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지혜(1학년·가명) 양은 “겁이 많지만 죽기 살기로 한 번 해보자 하고 타봤다”며 “숲속을 돌아다니고 짚라인도 타면서 험난한 일을 하고 나니 두려움이 많이 없어져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낯을 가려 활동 내내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던 김하얀(2학년·가명) 양은 “사실 아까 짚라인 타기 전엔 무서워 타지 말까 망설였는데 친구들과 함께 타며 장난도 치니 스트레스도 날아갔다”며 “낯가림이 심해 친구들과 이틀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다들 대화도 잘 통해 고쳐진 것 같다”고 말했다.

▲ 대전지역 고등학교 여학생 38명은 지난 25~26일 전북 군산 방장산자연휴양림으로 ‘나를 찾아가는 힐링열차’ 여행을 떠났다. 사진은 학생들의 프로그램 참여 모습. 사진=이나래 기자
◆용기와 힘을 얻고 소중한 인연도 만들어

돌아오는 열차 안 학생들 얼굴은 웃음꽃이 가득했다. “진짜 힐링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요”, “나중에 나이 들면 이런 숲속에서 집 짓고 살고 싶어요. 매일 이런 공기를 마실 수 있잖아요.” 출발하기 전 조용했던 열차 안과 달리 금세 친해진 학생들의 목소리로 열차가 시끌벅적했다. 1박 2일간의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오랜만에 맛본 휴식에 힘이 넘쳐난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지은(2학년·가명) 양은 “선생님이 권유해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애초 예상보다 재밌고 진짜 힐링이 된 것 같다”며 “좀 더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 가지 않았던 숲이라는 낯선 장소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니 머리도 맑아지니 안 좋았던 기억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며 또 오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혜지(2학년·가명) 양은 “처음 와 본 곳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섰지만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고, 내가 가진 고민을 공유하고 기댈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도희(1학년·가명) 양도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앞으로 가야할 길에 두려움이 사라진 것 같다”며 “나중에 학교나 사회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나래 기자 loki0527@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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