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대전사무소] 이야기로 풀어보는 인권위 결정례

“야, 한평화! 너 되게 배짱 좋더라.”

평화 씨는 학교 다녀오던 길에 버스에서 우연히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이 된 적이 있지만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고등학교도 각각 다른 곳을 다녔기에 중학교 졸업 이후 5년 만에 처음 마주친 거였다. 그런데 평화 씨의 동창은 인사말도 없이 엉뚱한 말을 꺼냈다. 

“배짱이 좋다니 무슨 말이야?”

“너 병역거부 했다며? 야, 누군 군대 가고 싶어서 가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가야 하니까 가는 거지. 너처럼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다들 군대 안 가면 우리나라는 누가 지키냐?”

평화 씨 동창의 말에 그들의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평화 씨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평화 씨는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서 있다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고 말았다.

평화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새로운 종교를 갖게 되었고, 오래지 않아 세례까지 받았다. 종교 생활을 계속하던 중 평화 씨는 군대 징집영장을 받았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기로 했다. 대신 민간 대체복무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하지만 평화 씨는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이 진행 중이던 어느 날, 평화 씨는 병무청으로부터 통지서 하나를 받았다. ‘병역의무기피자 인적사항 등의 공개’를 하겠다는 사전통지서였다. 병무청은 2015년 7월 1일부터 병역의무기피자 공개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다. 기피자의 인적사항 등을 일반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병역기피자가 마음을 돌려 병역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하고, 사전에 병역기피를 예방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평화 씨는 소명서를 작성하여 이를 병무청에 제출하였다. ‘병역 의무에 상응하고 군과 무관한 민간 대체복무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이행하고 싶고, 병역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머지않아 징역 1년6월의 형사 처벌을 받게 될 것이고, 이것이 확정되면 공개자 명단에서 삭제되어야 하므로 개인정보를 공개할 실익이 없음’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평화 씨의 소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얼마 후 평화 씨의 인적사항이 병무청 홈페이지에 공개 되었다. 버스에서 만난 평화 씨의 동창이 평화 씨의 병역을 거부를 알게 된 것도 어쩌면 병무청 홈페이지를 통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병무청이 평화 씨의 소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적사항을 공개한 것에는 문제가 있다. 평화 씨의 인적사항을 공개했음에도 실익이 없었고, 또 실익이 없음에도 공개를 한 것은 평화 씨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했기 때문이다. 병무청은 평화 씨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의 인적사항을 공개함으로써 그들이 마음을 돌려 병역의무를 다할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평화 씨는 인적사항이 공개된 후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니 실익이 없는 게 자명하다. 그리고 평화 씨의 인적사항을 공개하기까지의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 병무청은 인적사항을 공개하기 전 공개 여부를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했다. 「병역법」 시행령에서 획일적이고 일률적으로 판단하여, 인적사항 공개로 인해 당사자가 입을 권리의 침해를 줄이고자 공개 여부를 심의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 씨의 경우 심의과정에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고 대체복무를 원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그의 개별적 특성이 고려되지 않았고, 인적사항 공개로 인해 평화 씨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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