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 배재대학교 교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인간은 정치적 동물임을 간파한 바 있다. 인간이 사회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한 서로 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으며,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이 정치라고 한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정치를 혐오하고 있으며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누구누구는 정치적이야”라고 말할 때 이는 그 사람을 비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왜 우리는 정치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정치를 혐오할까?

이러한 이중성은 우리가 정치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특히 권력자에 대한 아부, 야합, 말 바꾸기, 뒤통수치기, 욕설과 몸싸움 등 한국 정치에서 드러나는 저급한 수준의 정치 현상에 우리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치의 긍정적인 측면은 인간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만약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정치가 없다면 인간 사회는 갈등과 혼란 그 자체일 것이다. 이러한 극도의 혼란 상태를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국가는 물론이고 가정이나 학교, 직장에서도 개인 혹은 집단간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돼 있다. 따라서 대화와 타협, 설득과 양보, 이해관계의 조정과 중재, 공동체 의식의 함양을 통한 협력 달성 등 긍정적인 정치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리더와 리더십이 필요하며 그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한 긍정적인 정치 과정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구성원과의 소통과 대화를 중시하는 민주적 리더십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프란스 드 발과 같은 침팬지 연구자들에 따르면, 심지어 침팬지 사회의 리더가 결정되는 과정에서도 구성원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며 또한 리더가 된 후에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아야만 한다고 한다. 침팬지 사회에도 민주적 권력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로마의 네로 황제,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 북한의 김일성 등 대표적인 독재자들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기 위해 노력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넓은 의미의 민주정치 혹은 민주적 리더십은 인간이 만든 제도라기보다는 인간의 본능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대화, 타협, 설득, 양보, 조정과 중재임을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알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민주적인 리더와 민주적인 리더십을 원한다.

인간 사회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민주적으로 변화해 왔고 마침내 선거를 통한 권력의 탄생이라는 민주적 정치제도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변화가 때로는 더디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후퇴하기도 해 왔지만 그 커다란 역사의 흐름을 우리는 절대 거스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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