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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역사 용어와 개념, 바로 잡아야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8년 10월 24일 수요일 제22면     승인시간 : 2018년 10월 23일 18시 24분
김덕수 공주대학교 교수

조선사와 한국근현대사를 독학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조선사 공부는 이순신 제독에 대한 연구가 계기였다. 또 한국근현대사 공부는 메이지 일왕과 고종의 비교연구를 하면서 시작했다. 그래도 20여년 동안 꾸준히 관련 책을 읽고 여러 논문들을 참조했으니 이제는 나름대로 할 말이 많아졌다. 혹자는 나를 돌팔이 역사연구가라고 폄훼할지 모른다. 나는 그런 말에 전혀 게으치 않는다. 어차피 역사 분야는 내 전공인 경제학(經濟學)과 다르다면 다르고, 같다면 같기 때문이다. 오늘은 몇 가지 관점에서 한국 역사학계에 대해 정중하게 몇 말씀 드리고자 한다.

첫째는 우리는 1592년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대가 쳐들어온 사건을 임진왜란이라고 배운다. 또 청나라 군대가 1627년과 1636년에 쳐들어온 사건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고 가르친다. 난(亂)과 전쟁은 다른 개념이다. 즉 난은 전쟁에 비해 병력이나 피해 규모가 작을 때 사용한다. 임진왜란은 왜 정규군 15만 8000명과 명군(明軍) 4만 3000명이 조선에 참전했다. 당연히 조·명·일 국제전쟁으로 명명해야 옳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도 청나라 정규군 3만명과 12만명이 쳐들어온 국난(國難)이다. 따라서 정묘호란은 제1차 조·청 전쟁, 병자호란은 제2차 조·청 전쟁으로 불러야 옳다. 난과 전쟁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평화를 말할 자격이 없다.

둘째는 역사학계는 ‘독립’에 대해 애매모호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의 독립시점을 종종 물어본다. 대부분 1945년 8월 15일이라고 대답한다. 맞는 말인가? 우리나라의 진정한 독립일은 1948년 8월 15일이다. 1945년 8월 15일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이지만 독립일은 아니다. 우리는 그로부터 3년 동안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되었다면 미 군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또 대한민국의 건국을 왜 조선 땅이 아닌 남의 나라 중국에서 했는가? 역사신(歷史神)이 혐오하는 것은 거짓과 날조다. 지금 한국에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셋째는 나는 일제(日帝)식민통치기간을 36년이라고 배웠다. 또 일본군에게 성 학대를 받은 할머니를 위안부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나는 그런 말에 불편함과 모욕감을 느낀다. 겉으로는 일제와 친일파에 대한 악감정을 표현하면서도 속으로는 일제의 본질에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통치기간은 1910년 8월 22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다. 이 기간을 정확히 계산하면 34년 11개월 28일이다. 나는 거기에 1년 1개월 3일을 보태 36년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을 이해할 수 없다. 또 위안부의 영어식 표기는 ‘Comfort Woman’이다. 이는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용어다. 스스로 진보인사라고 자처하면서 위안부라고 말하는 분들은 꼴통진보다. 위안부는 ‘일제 전범(戰犯)들에 의한 성 피해여성’으로 표현해야 옳다. 위안부할머니의 청동상을 제작 전시해서 대일(對日)증오심을 자극하는 행태보다 우리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부터 바로잡아 나가는 자세가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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