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대전사무소] 이야기로 풀어보는 인권위 결정례

터엉!
볼이 미끄러지듯 굴러가 하얀 핀을 쓰러뜨리며 내는 소리를 들을 때면 인권남 씨의 심장은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곤 한다.

‘그래! 이 맛이지.’

인권남 씨는 볼링을 꽤나 좋아하고 실력도 프로 선수 못지않은 편이다. 인권남 씨가 볼링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직장에 동호회가 여럿 있었는데 인권남 씨는 그 중에서 볼링동호회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입사 동기와 함께 볼링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처음엔 의욕과 달리 점수가 나지 않았지만 기술을 연마하면서 점차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볼링이랑 연애에 빠졌구만!”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동안 인권남 씨는 볼링을 좋아했고 퇴근 후나 주말에는 볼링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하지만 군대에 다녀오고 직장을 옮기면서 조금씩 볼링과 거리가 멀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였다. 더군다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더욱 그랬다. 

그렇게 볼링을 잊고 살던 40대 초반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됐고, 인권남 씨는 집 근처에 볼링장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아이들도 자라고 직장에서도 여유가 있던 터라 다시 볼링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권남 씨는 볼링장을 찾았고 거기서 동호회를 소개받아 활동하게 됐다. 볼링과 거리를 두고 살았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는지 볼링을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아 왕년의 실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잘 하는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나 몰라?”
“그러게. 꾸준히 했으면 지금쯤 프로대회에서 날리고 있을 텐데.”

인권남 씨의 경기를 지켜본 동료들은 감탄을 하며 한마디씩 하곤 했다. 인권남 씨는 다시 전성기를 맞이한 기분이 들었다. 동호회 활동을 한지 6년 여. 인권남 씨는 프로볼링대회에 참가하는 동료들을 보며 자신도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회에 참가하여 프로 선수들과 경쟁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자신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순위권을 노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프로대회에 참가하려는 인권남 씨의 계획은 좌절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프로볼링대회를 개최하는 프로볼링협회에서 선수 자격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협회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정회원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정회원 자격을 남성은 만45세 이하, 여성은 만40세 이하로 규정하였다.

프로볼링협회가 나이에 따라 자격을 제한한 것은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프로선수자격증을 취득한 후 대회참가 등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프로선수자격증을 영리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례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나이 많은 선수는 체력이 떨어져 좋은 경기를 펼치기 힘들고, 경기력 저하와 중도 포기로 경기시간을 지연하거나 진행에 차질을 빚는 등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러한 프로볼링협회의 자격 제한 규정이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협회 조치는 일부 불성실한 회원의 문제를 일반화한 것일 뿐만 아니라, 특정 연령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심화시키고 세대 간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나이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 경기력이 저하된다는 이유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높아지고 있고, 체력의 문제는 개인마다 그 차가 다르기 때문이다. 설령 체력 문제나 회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회원 자격을 정지하거나 선수 자격을 반납시키는 행정적 조치로 해결할 문제이지 나이를 기준으로 하여 배제시켜야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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