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세 세종시의회 부의장

흔히들 세종시는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세워진 도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거쳐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전까지만 해도 조상대대로 오손도손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소박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을 기반으로 세종시가 들어섰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가 살았던 연기군 남면 갈운리는 햇살이 따사로운 남향 마을이었다. 봄이면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었다. 가재가 움직이는 시내가 있었고, 개구리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 이었다. 동네 분들은 정답고 따뜻한 분들이었다. 키우던 닭이 사라졌을 때 동네 사람들에게 은근히 혐의를 두면서 속상한 마음을 하소연하던 나를 동네 아주머니들은 다독여 주셨다. 외지에서 장사꾼이 들어오던 날 키우던 개들이 없어지더라고, 절대로 동네 사람들 소행은 아니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고 하셨다.

해마다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쌀 한 말씩 거둬 이장님께 사례를 하고 돼지를 잡고 떡과 음식을 차리고 동제를 지내고 풍물과 소리를 했다. 철 되면 종자를 나눠 주시고 농사를 가르쳐 주시던 동네 아저씨들, 어르신들. 지금은 다들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새록새록 보고 싶고 그립다.

아름답고 정겨웠던 마을은 행정수도가 들어서야 한다는 의지와 욕망에 따라 사라졌다. 남면, 금남면 주민들이 보상을 받아 부자가 됐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내가 알기로는 부자가 된 사람은 극소수이다.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소문은 적은 땅과 집을 내어 주고 떠나 간 사람들의 슬프고 애달픈 사연을 모두 묻어 버렸다. 이주민들의 실태와 사연들은 이제라도 제대로 된 조사와 분석에 의해 밝혀질 필요가 있다. 터를 내주고 받은 보상으로 근처의 땅을 사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갖고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던 분들. 살던 집과 논과 밭, 아름다운 언덕과 시내를 내어 주었던 분들, 그야말로 자신들의 속살을 내어 주고 떠난 분들이 아니겠는가?

나는 갈운리에서 살던 끈으로 다시 들어 와 고운동에 터를 잡았다. 내가 살았던 갈운리가 어디쯤이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고 원수산만 보인다. 여기쯤인가 희미하게 짐작만 할 뿐이다. 알고 보니 고운동은 남면의 고정리와 내가 살았던 갈운리에서 한 글자씩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고운동이라는 이름 중 한글자로나마 갈운리의 흔적이 남았다는 사실이 아주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

세종시가 옛날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는 없겠지만 고정리, 갈운리의 따스했던 정이 오고 가는 아름답고 고운, 고운동으로 재해석되고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따뜻한 정과 서로 아끼고 돕는 그 마음은 이어지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연친화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과 생태가 보존되는 마을이 되기를 소망한다.

행정수도의 면모를 만들어 낸 것도 우리의 의지에 의해, 기적과 같은 우여곡절을 거쳐 온 결과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편리하고, 더욱 효율적인 도시가 조성되기를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면 금개구리로 상징되는 옛 농촌마을의 조그마한 서식지까지 시민들의 이용형 공원이라는 명분과 욕망에 의해 깡그리 없애야 하겠는가? 논과 밭, 살던 터전을 내어 주고 떠났던 이주민이자 시의원으로서 세종 시민들에게 간절하게 던져 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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