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도시의 그림자, 화려하고 활기찬 대도시 어디에선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공간을 '지옥고'라는 안타까운 이름으로 부른다. 지하방 옥탑방 그리고 고시원. 열악한 공간에서 고달픈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 특히 이제 사회 문턱에 진입하여 일하고 공부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여기에 거주한다. 이런 주거지를 개선하여 보다 나은 환경에서 젊은 열정과 의지를 사회로 이끌어 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조성하는 것이 행정이며 정치의 소임이 아닐까.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당리당략으로 소모적 정쟁에 몰두하고 지자체에서는 표 얻기에 몰두하여 홍보성 사업, 치적과시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도시가 비대해지면서 이런 현상은 서양의 경우 이미 19세기부터 발생하였고 우리는 1960년대 근대화, 도시화 붐을 타고 도시 인구유입으로 가속화 되었다. 특히 이즈음 청년 1인가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경기침체와 구직난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가중되고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대대적인 도시 재정비 작업을 벌인 프랑스 파리<사진>는 특히 모든 건물의 증·개축을 극도로 통제하는 등 규제가 엄격하여 주택난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소득이 영세한 젊은이들이 기거할 주거여건은 우리의 지옥고를 연상시킨다. 통칭 '하녀방'이라고 부르는 지붕 바로 아래 협소한 공간이 대표적인데 통상 7~8층에 위치하고 있지만 엘리베이터는 물론 화장실, 세면공간도 공용인 경우가 많다. 이런 좁디좁은 하녀방도 월세 70만원을 넘어 소득의 1/2~1/3을 집세로 지불한다는 것이다. 침대와 작은 테이블 하나를 놓으면 돌아서기도 어려운 협소한 공간에서 젊은이들은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찾는다.

앞으로 우리 사회를 떠받들고 견인할 젊은이들에게 적절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일은 매우 시급하다. 근래 노령층이 거주하는 집에 함께 살도록 주선하는 정책을 편다는데 그런 임시처방이 대안이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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