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골든아워'

▲ (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이국종 교수가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회복 상태 등을 설명하고 있다. 2017.11.22 xanadu@yna.co.kr
▲ (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이국종 교수가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회복 상태 등을 설명하고 있다. 2017.11.22 xanadu@yna.co.kr
▲ (수원 아주대병원=연합뉴스) 11일 아주대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삼호주얼리호 석해균(58) 선장. 사진 우측은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 <<지방기사 참고, >> 2011.2.11.  kcg33169@yna.co.kr
▲ (수원 아주대병원=연합뉴스) 11일 아주대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삼호주얼리호 석해균(58) 선장. 사진 우측은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 <<지방기사 참고, >> 2011.2.11. kcg33169@yna.co.kr
죽음·절망과의 싸움 17년…이국종 교수의 비망록

신간 '골든아워'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이국종 아주대 의과대학 교수가 삶과 죽을 가르는 사선(死線)에서 17년간 고군분투한 외상외과 의사로서의 삶을 책으로 펴냈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과 총격을 받은 북한 귀순병을 살려내 국민적 관심을 한몸에 받은 그지만, 중증외상 분야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 제대로 된 중증외상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한 그의 싸움은 여전히 외롭고 지난하다.

두 권으로 발간된 저서 '골든아워'(흐름출판 펴냄)에는 외상외과에 처음 발들 들여놓은 2002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그가 맞닥뜨린 냉혹한 현실, 병원의 일상과 환자들의 사연, 고뇌와 사색이 담겼다.


책은 대한민국 중증외상 의료 현실에 대한 냉정한 보고서이자, 시스템이 기능하지 않는 현실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의료진, 소방대원, 군인들에 관한 기록이다.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한국 화물선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 작전과 그 과정에서 여섯 발 총탄을 맞은 석 선장을 기적처럼 소생시키기까지 과정이 눈을 떼기 힘들 만큼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로 그려진다.

이 교수는 석 선장을 구하기 위해 오만으로 떠날 당시 절박한 상황을 떨어지는 칼날을 잡는 데 비유했다.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 석 선장은 무겁게 떨어지는 칼날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나쁠 때 의사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환자가 살아나도 공은 제 몫이 되지 않고, 환자가 명을 달리하면 그 책임은 마지막까지 환자를 붙들고 있던 의사가 오롯이 져야 한다. 그것이 이 바닥의 오랜 진리다. 석 선장이 살 가능성은 희박했고, 최악의 경우 내가 져야 할 책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1쪽 222쪽)

선진국 수준의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이 교수 노력은 정부 당국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가 석 선장을 통해 빛을 보게 됐다. 2012년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전국 거점 지역에 정부 지원을 받는 권역외상센터가 설립됐다.

하지만 싸움은 끝이 아니었다. 권역외상센터가 출범했으나 만성적인 적자에 발목이 잡히고 비용 효율성을 따지는 당국의 추궁에 움츠러들었으며, 전반적인 시스템은 여전히 미비했다.

이 교수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느낀 무력감을 가감 없이 증언한다. 경기도권역 중증외상센터장이던 그는 사고 소식에 구조 헬기를 타고 두 차례나 현장 접근을 시도했으나 당국의 제지로 물러나 속절없이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고 한다.

그는 세월호 비극에서 누구보다 생생하게 국가 시스템의 부재를 읽어낸다.

"세월호 침몰을 두고 '드물게' 발생한 국가적 재난이라며 모두가 흥분했다. 나는 그것이 진정 드물게 발생한 재난인지, 드물게 발생한 일이라 국가의 대응이 이따위였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이든 국가든 진정한 내공은 위기 때 발휘되기 마련이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은 갈 길이 멀어 보였고, 당분간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2권 93쪽)

2017년 11월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 총격을 받고 실려 온 북한군 병사는 수년 전 오만에서 마주한 석 선장과 그대로 겹쳤다고 한다.

귀순병 역시 극적으로 소생했으며 그새 관심 밖으로 멀어진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추가 지원을 다시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2011년 석해균 선장이 복지부 캐비닛에 처박혔던 중증외상센터 정책을 끌어내더니, 북한군 병사가 죽어가던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을 건져낸 셈이었다."(2권 281쪽)

이 교수는 숙원인 국제 표준의 중중외상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분투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메커니즘을 체득했다고 말한다.

"시스템은 부재했고, 근거 없는 소문은 끝없이 떠돌았으며, 부조리와 불합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돈 냄새를 좇는 그림자들만이 선명했다."(1권 9쪽)

그의 현실 인식은 비관적이고, 글은 환부를 가르는 메스처럼 냉정하고 예리하다. 문장에선 견고한 현실에 부딪혀 부서져 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노여움과 서글픔이 배어 나온다.

"내 몸은 무너져가고 있고, 우리 팀이 피땀으로 구축하고 유지해온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도 얼마나 더 버틸지 알 수 없다. 작금의 상황을 보건대, 가까운 미래에 대한민국에서, 국가공공의료망의 굳건한 한 축으로서 선진국 수준의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겠다는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1권 11쪽)

1권 440쪽, 2권 380쪽. 각 권 1만5천800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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