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무언가에 아주 집중되어 헤어나오지 못할 때, 우리는 ‘빠졌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중립적인 표현이지만 많은 이들이 부정적인 표현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일례로 ‘게임에 빠진’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주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

반면 e스포츠 강국으로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핀란드에서는 게임을 건강하게 소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혹자는 핀란드의 게임 문화를 보고 핀란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낮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겠다.

그러나 3년마다 실시하는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핀란드는 대한민국보다 꾸준히 좋은 결과를 내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무한경쟁과 성과지상주의가 큰 축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고, 삶 그 자체가 경쟁이며 매 경쟁에선 이기는 것이 미덕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이러한 시각은 학생들에게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학생의 ‘본분’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여겨지는 학업을 강조하게 했다.

설령 학업 외의 다른 활동들에 발을 들여놓게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 한해서일 경우가 많다. 물론 경쟁은 긍정적인 요소 역시 내포하고 있으며 성과도 과정 못지않게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도를 지나쳐 균형을 잃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PISA에서 지속적으로 우수한 성취도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의 학습 동기나 흥미 척도에서는 대한민국이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순위가 낮기 때문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행복해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우리가 바라보는 경쟁의 실체란 무엇인지, 행복한 삶을 위한 핵심가치는 무엇인지 등 조금 더 깊이 있는 고민을 온 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에도 ‘빠졌다’라는 표현을 붙여 쓴다. 이처럼 빠진다는 것은 비단 나쁘기만 한 일이 아니다. 20여 년간 교직에 몸담은 교육자로서도, 학생들을 포함한 이 시대의 청년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흠뻑 빠져들어 스스로 선택한 삶의 행복을 느끼길 바라고 또 응원하고 싶다.

청년들의 노력을 탓하기 이전에, 그들이 무언가에 빠져들 때 이를 무조건 가로막으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청년들도 의구심이나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길에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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